[단독]서울 빗물터널 등 공공시설 52%, 공사비 급등에 유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3일 03시 00분


유찰률, 2020년 상반기 3배 육박
지역 필수시설 잇달아 공사 지연


공사비 급등으로 올해 상반기(1∼6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입찰에 부친 대형 공공 공사 중 절반 이상이 유찰된 것으로 조사됐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건설사들이 참여를 꺼리며 안전시설과 쓰레기소각장, 종합병원 등 지역 필수시설의 공사마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동아일보가 조달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진행한 사업비 300억 원 이상 대형 공공 공사 입찰에서 유찰률은 51.7%로 집계됐다. 입찰 결과가 발표된 87건 중 45건이 유찰됐다.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상반기(18.2%)의 3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유찰률은 2020년 이후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값 급등, 최저임금 상승 등의 영향으로 매년 상승했다.

지역주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공사도 유탄을 피하지 못했다. 서울시가 집중호우 피해를 막기 위해 추진 중인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는 올해 1월 최초 입찰을 진행했지만 2차례 유찰됐다. 3번째 시도에 공사비를 증액해 5월 사업자를 가까스로 선정했다. 이 여파로 예상 완공 시점은 2027년에서 2028년 말로 1년가량 밀렸다. 지난해 1월 입찰을 시작한 충북 제천의 폐기물소각장, 경기 시흥의 서울대병원 공사 건은 아직도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공사비 급등에… 소각장 3회 유찰, 병원 못지어 원정진료도
대형 공공시설 52% 유찰
건설사, 물가 반영 안돼 사업 꺼려… 제천 쓰레기 매립, 수의계약 추진
GTX 삼성역 지하개발도 6회 유찰… “발주전 사업비 검증 절차 강화를”

2022년 8월 정부 관계자들이 서울 양천구 목동빗물 펌프장 내 대심도 빗물터널을 현장점검하고 있다. 집중호우로 서울 강남역 등에서 침수 사태가 발생한 직후다. 동아일보DB
2022년 8월 정부 관계자들이 서울 양천구 목동빗물 펌프장 내 대심도 빗물터널을 현장점검하고 있다. 집중호우로 서울 강남역 등에서 침수 사태가 발생한 직후다. 동아일보DB
통상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공 공사들은 사업비가 넉넉하진 않지만 최소한의 안전 마진 정도는 보장한다. 사업이 도중에 중단될 우려가 적고 이력이 남는 만큼 건설사들이 선호해왔다. 하지만 원자재 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최근 3년간 공사비가 30%가량 급등했는데 사업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자 건설사들은 공공 공사 입찰 참여를 꺼리고 있다. 특히 안전 및 교통 등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의 경우 설계 및 공사가 수년간 지속되는 만큼 추가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큰 상황이다.

공사가 지연된 대표적 지역 필수시설은 서울 대심도 빗물터널이다. 2022년 8월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잇따르자 서울시는 강남·광화문·도림천에 빗물터널을 짓기로 했다. 당초 서울시는 공사비로 1조4100억 원을 책정했지만 기획재정부 심사에서 2000억 원 이상 예산이 삭감되면서 2차례 유찰됐다. 사업비를 1700억 원 증액한 결과 3번째에 겨우 사업자를 선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심도 공사는 사례가 많지 않고 난도가 높아 사업자 선정에 시간이 걸렸다”며 “이르면 올해 말 착공하겠다”고 밝혔다.


충북 제천시는 지난해 1월부터 80t 규모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공사를 입찰에 부쳤으나 3차례 유찰됐다. 현재 보유한 50t 규모 소각시설의 내구 연한이 지난해 말 종료돼 처리 효율은 하루 40t 수준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제천시에서 하루 발생하는 생활폐기물 규모는 80t으로, 수질 및 토양 오염 우려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를 직매립하며 수의계약 전환을 추진 중이다. 제천시 관계자는 “기재부에 사업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2030년부터는 쓰레기 매립이 금지돼 서둘러 소각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필수 의료시설 건립도 차질을 빚고 있다. 경기 시흥시는 지난해 1월부터 800병상 규모의 서울대병원 건립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으나 4차례 유찰됐다. 지역 주민들은 인천, 부천, 안산 등으로 원정 진료를 다니고 있다. 그나마 올 2월 사업비를 500억 원 이상 올린 5883억 원으로 책정해 현대건설과 수의계약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핵심 정차역인 삼성역의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 2공구 사업은 2022년 이후 6차례 유찰 끝에 이번 달에야 현대건설이 입찰에 참여했다.

현재 정부의 공사비 산정 방식은 물가 상승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사업비 책정에 ‘건설공사비지수’와 ‘건설투자국내총생산(GDP)디플레이터’ 중 낮은 값을 활용하고 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해 151.9까지 올랐는데, 건설투자GDP디플레이터는 133.8로 격차가 크다. 이와 함께 과거 입찰 사례를 토대로 공사비를 책정하기 때문에 현재 시점의 물가를 반영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B/C)이 높아야 사업 추진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초기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는 경향도 있다. 국토부는 올해 3월 공공 공사 사업비에 물가 반영 기준을 현실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공사 기간 중 비용 상승분을 반영하긴 하지만 건설업계에선 부족하다는 불만이 많다. 2008년 위례신도시 교통대책으로 추진된 위례신사선 사업은 서울시가 1100억 원 증액을 거부해 GS건설이 사업을 포기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공공 공사 발주 전 사업비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새로운 공법이나 자재를 활용하는 경우 전례를 기반으로 공사비를 책정하면 실제 소요 비용과 오차가 커지는 만큼, 시공사 및 전문가 등과 함께 적정 공사비를 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연구교수는 “공사 종류마다 들어가는 원자재가 다 다른데 일괄적으로 같은 물가 지수를 활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기업들이 체감하는 실질 물가 항목들에 대한 반영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빗물터널#공공시설#공사비 급등#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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