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한 장, 한 장이 귀합니다. 2만 원이었던 한 상자가 며칠 만에 4만 원 중반이 됐어요.” 22일 오전 0시 30분경 대전 유성구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경매장에서 만난 중도매인 김대겸(25) 씨는 바닥에 떨어진 상추 한 장을 탈탈 털어 상자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전북에서 올라온 청상추 20상자를 낙찰받았다. 김 씨는 “폭우가 퍼붓고 가더니 금(金)추가 됐다. 비싸게 주고 사도, 푹푹찌는 날씨 때문에 금방 상한다”고 했다.
● 썰렁해진 경매장
이날 오전 1시가 지나자, 시장에 걸린 전자 온도계에는 기온 29도, 습도 75%가 찍혔다. 상추나 깻잎 같이 잎줄기를 먹는 채소인 엽경채류는 무더위에 쥐약이다. 잠깐 밖에 내놔도 금세 풀이 죽기 때문에 엽경채류 경매는 따로 마련된 저온 경매장에서 한다. 537㎡ 규모 저온 경매장에는 대형 냉방기 4대가 있다. 내부 기온은 20도 안팎을 유지한다.
경매사들은 “적상추, 호이야 아이요”하며 타령 같은 호창(呼唱)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중매인들은 암호와 같은 호창에 따라 휴대전화 모양의 입찰 단말기를 손에 쥐고 100원이라도 싸게 사려는 눈치 싸움을 이어갔다. 이우혁 엽경채류 전담 경매사는 “폭우 이후 채소 품질, 물량, 가격이 널뛰다 보니 생산자와 도매인 양쪽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폭우에 농작물 피해가 이어지면서 경매장은 썰렁해졌다고 한다. 중도매인 유성관(51) 씨는 “원래 경매장은 채소 상자가 높게 쌓여 마치 미로처럼 되는데, 비가 온 이후에 물건이 줄면서 전보다 휑하다”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실시간 경매 현황에 따르면 비가 내리기 전인 9일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경매장에서 거래된 상추는 총 1880kg, 경매 총액은 714만9400원이다. 충청권에 시간당 100mm 넘는 극한 호우가 내린 다음 날인 11일에 거래된 상추 양은 총 1335kg, 경매 총액은 839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폭우 전날과 다음날을 비교하면 물량은 28.9%(545kg) 줄었지만, 경매가는 17.3%(124만2600원) 늘었다.
● 2주 만에 83% 껑충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2일 기준 충남 논산지역 상추 총 재배면적 726ha(헥타르) 가운데 6.9%(50ha), 전북 익산지역 276ha 중 18.1%(50ha)가 물에 잠겼다. 수해에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은 뛰었다.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경매에서도 상추 가격이 출렁였다. 9일 4kg짜리 적상추 한 상자 최고 낙찰가는 3만800원이었지만, 23일에는 5만6500원으로 83% 뛰었다. 권대환 채소경매팀장은 “장마 때는 저장성이 떨어지는 상추 같은 쌈채류 가격이 널뛰는데, 갈수록 여름 장마가 극단적으로 변해서 적정가격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마트와 계약을 맺은 일부 중도매인들도 납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마 전에 약속한 납품 물량과 가격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용원 노은중도매인연합회 채소지부 회장은 “물량은 적고 가격은 높아진 상황”이라며 “계약 물량을 맞추려면 비싸게 주고 물건을 더 가져오는 수밖에 없어 팔수록 손해”라고 하소연했다. 상추를 많이 쓰는 고깃집도 고육지책을 짜내고 있다. 중구 오류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행자 씨(69)는 “올 초에 청상추 한 상자는 3, 4만 원 주고 샀는데 며칠 전 8만 원을 줬다”며 “내년을 대비해 텃밭에 상추를 심어 충당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