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토요일 오후 10시, 20대 청년 A 씨는 휴대전화 너머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금 편의점 아르바이트(알바)를 끝내고 집에 가는 중”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A 씨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3시부터 10시까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달에만 배달업체 물류창고 정리, 사무 보조, 인공지능(AI) 데이터 음성 녹음 등 4개 단기 알바를 병행했다. A 씨가 이처럼 숨 가쁘게 단기 알바를 하는 이유는 뭘까. “나도 한 알바 자리에서 진득하게 일하고 싶지만, 주휴수당 주길 꺼리는 사장들이 15시간 이상 알바를 쓰지 않는다”는 게 A 씨의 설명이다. 단기 알바 자리라고 쉽게 구해지는 것도 아니다. A 씨는 “이번 달 31곳 단기 알바에 지원했지만 대부분 이력서조차 보지 않은 듯하고 지금 일하는 4곳에서만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7월 19~23일 주간동아가 만난 청년 알바 근로자 25명은 ‘생계형 단기 알바’를 취업 준비, 학업 등과 병행하느라 힘이 많이 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청년 알바의 현실과 고충을 듣고 싶다”는 취지에 공감한 이들은 알바가 끝난 늦은 밤이나 다른 알바를 하러 가는 길에 틈틈이 전화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를 통한 인터뷰에 기꺼이 응했다. 청년 알바 근로자들은 “여러 알바를 병행하거나 고강도 알바를 감수해야 겨우 생활비를 벌 수 있다” “생계를 위해 알바를 전전하면 밥 먹을 힘도 없어 취업 준비(취준)나 학업에도 지장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사장들이 주휴수당 주길 꺼려 15시간 알바 자리 없다”
‘동아일보’가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월 20, 30대 초단시간(주 15시간 미만) 취업자는 1년 전(38만2300명)보다 17% 늘어난 44만7200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2030세대 전체 취업자는 910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1% 줄었다. 청년 일자리가 양적·질적 측면에서 모두 악화된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 40.2%가 당장 생활비 등 수입이 필요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하는 비자발적 취업자였다.
전일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비정규 시간제 일자리로 내몰린 청년들은 고강도 알바와 취업 준비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기자가 전화 인터뷰에서 “일주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알바에 할애하느냐”고 묻자 20대 윤모 씨는 자신의 1주일 알바 시간표를 설명해줬다(표 참조). 윤 씨는 알바 3개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고 했다. 평일 대부분 시간을 알바에 쏟아야 한 달 110만~130만 원이 들어온다. 그중 월세를 내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쓴다. 친구와 식사 약속을 잡지 않는 등 외식비를 줄여도 식비가 빠듯한 탓에 윤 씨는 종종 즉석밥과 김으로만 끼니를 때운다. 처음 알바를 시작했을 때 “젊을 땐 시간이 많고 돈은 없다”고 스스로 다독인 윤 씨는 PC방 알바 3년 차인 지금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는 매주 수요일 밤을 새운다. 화요일 밤 알바가 끝나면 곧바로 작업실로 이동해 수요일 저녁 막차가 끊길 때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작품 활동에 매진한다. 알바 3개를 돌고 남는 시간에 창작 활동을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몸이 축나도 돈은 벌어야 하니 알바를 그만둘 순 없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알바 3개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게 윤 씨 설명이다.
서울~대전 오가며 취준·알바 병행
그래픽디자인 분야 취업을 준비하는 김가은 씨(24)는 지난해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학업, 취업 준비, 알바를 동시에 감당했다. 오전 대전에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 국가장학재단 연계형 인턴 활동을 한 후 저녁에는 취업 포트폴리오 준비를 위해 서울에 있는 학원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돌아오면 새벽 2시였지만,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나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 3~4시간 눈을 붙이고 김 씨는 다시 서울~대전을 바쁘게 오가는 일과를 시작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아토피피부염에 걸려 한참 고생했다는 김 씨는 “지방에 살면 이동 시간과 비용이 모두 많이 들어서 취업에 불리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취업 한파에 알바 자리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부산에 사는 김모 씨(32)는 최근 한 달간 구인·구직 플랫폼 4군데를 통해 파트타임 일자리에 80회 이상 지원했지만 한 곳에서도 답을 받지 못했다. 쿠팡 물류센터 알바는 30일간 매일 신청했고 입주 청소, 식당 설거지, 카페 음료 제조, 드라마 단역 등 다양한 파트타이머 채용에도 지원했다. 김 씨는 “이전에 다니던 회사가 폐업해 2년째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업계 경력이 6년 차고 10인 미만 규모의 기업에 지원하지만 취업이 안 돼 알바 자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가 괜찮은 알바는 근로 강도가 세다. 20대 배모 씨는 생활비를 벌고자 쿠팡, 마켓컬리 등 물류센터 단기 알바를 1년가량 계속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하려면 근로시간이 고정된 알바가 부담스러운 탓도 있었다. 배 씨는 금요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알바를 했다. 토·일요일 8~9시간씩 풀타임으로 일하면 일당은 10만 원 정도로, 한 달에 약 70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여기에 군 복무 시절 저축한 돈도 생활비로 보태지만 넉넉하진 않다. 집이 부산인 그는 때론 일당 18만 원에 혹해 대전에 있는 물류센터까지 가기도 했다. 평소 운동을 즐기고 육체노동에 익숙한 배 씨도 물류센터 알바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그가 꼽은 가장 힘들 알바 자리는 여름철 쿠팡 물류센터였다. 배 씨가 일한 한 물류센터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대형 선풍기 앞에서 잠시 땀을 식혀도, 휴식시간에 회사가 무료로 제공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2개월을 버틴 끝에 배 씨는 결국 실내온도 영하 20℃를 유지하는 신선센터 냉동창고 업무에 지원했다. “영하 기온은 파카를 껴입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만, 육체노동을 할 때는 더위가 정말 무섭다”는 게 배 씨의 설명이다.
“잠 더 줄이고, 더 열심히 취준해야 하는데…”
당장 알바 자리를 구해도 안심할 순 없다. 질 낮은 알바 자리가 많아 ‘알바 유목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청년들의 하소연이다.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신모 씨는 지난 7년간 PC방, 프랜차이즈·개인 카페, 치킨집, 뷔페, 빵집 등 12가지 알바를 했다. “한 가게에서 꾸준히 일하는 게 수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퇴직금·주휴수당·휴식시간 무엇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엇보다 성희롱을 일삼는 사업주도 있어 참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한 PC방 사장은 주휴수당을 요구한 신 씨의 동료에게 “그럴 거면 나오지 마라. 요즘 애들은 이런 것도 다 받으려 한다”며 핀잔을 줬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의 경우 노동부 공무원이 관리감독을 나와 “휴식시간 30분을 줘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바뀐 게 없었다고 한다. 각종 성희롱에 노출되는 알바 청년도 적잖다. 신 씨는 “너 같은 애들이 다정하게 웃어주면 나 같은 사람은 오해한다”며 치근대거나 어깨를 문지르는 등 언어·신체적 성희롱을 하는 사장도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신 씨는 수개월 일한 가게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알바를 하며 겪은 불쾌한 경험은 신 씨가 진로를 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알바를 하면서 부당한 일을 직접 당하거나 목격할 때마다 틈틈이 근로계약서와 근로기준법을 찾아봤다. 기자와 전화 인터뷰 중 ‘주휴수당 지급 규정’을 줄줄이 읊을 정도로 그는 노동 관련법에 빠삭했다.
청년들이 단기간 노동에 내몰리는 배경에는 ‘주휴수당’ 문제가 있다. 근로기준법상 고용주는 1주일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에게 유급휴일을 하루 이상 줘야 한다. 이 같은 법 적용을 피하려고 알바를 1주 15시간 미만으로 고용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경기 시흥에 거주하는 함모 씨(23)는 평일 아침 7시 30분부터 10시까지 카페에서 알바를 한다. 화·목·토요일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진 고깃집, 일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는 일식집에서 서빙을 한다. 함 씨는 “원래 토요일과 일요일 일식집 알바만 했는데, 대학 편입 학원비를 벌기 위해 지난달부터 아르바이트를 3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곳에서 길게 일하고 싶은데 주휴수당 때문에 1주일 15시간 이상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빵집, 고깃집, 학원에서 알바를 하는 차모 씨(23)는 “빵집 사장은 내게 대놓고 ‘주휴수당 안 주려고 1주일에 8시간만 일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1주일 15시간 넘게 일해도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에 사는 20대 후반 여성 B 씨는 4월 한 달간 주 40시간 사무보조 알바를 했다. 이 과정에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주휴수당도 받지 못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B 씨는 “일주일에 40시간 일했음에도 주휴수당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며 “돈 버는 게 급했고 사장이 점심을 무료로 줘서 그냥 참고 아무 말 없이 일했다”고 전했다.
구직난으로 안 그래도 힘겨운 취업 준비와 알바를 병행하는 청년들은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칠까 두렵다”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김유리 씨(24)는 “알바와 취준을 병행하는 가운데 집중력이 떨어지는 내 모습을 보면 자괴감이 든다”면서 “잠을 더 줄이고 더 열심히 취준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심적으로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청년 A 씨는 올해 상반기 25개 기업에 원서를 넣었으나 모두 낙방했다며 한숨지었다. 그는 “인맥이 부족해 현직자와 취업 준비생을 연결해주는 유료플랫폼에 15만 원을 썼다”며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상황이라, 그룹 스터디나 면접 컨설팅에 비용을 더 써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A 씨는 “요즘 알바 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생활비와 취준 비용을 벌어야 해 닥치는 대로 알바 자리에 지원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전혜빈 기자 heavin01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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