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은 기술 발전과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특히 2022년 이후 반도체 사이클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한다. 변화는 종종 불편함을 야기한다. 달라졌다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새로이 생겼다는 것이고, 이는 곧 과거의 패턴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의 이해와 시장 전망을 위해선 과거 대비 달라진 것과 여전히 중요한 요소들, 즉 변하지 않은 것을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정보기술(IT) 세트 증가율의 둔화다. 스마트폰, PC 같은 소비자용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출하량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24개월마다 스마트폰을 바꾸지 않는다. PC는 팬데믹 기간 중 일시적인 증가를 보인 후 다시 과거 추세로 급격히 회귀했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IT 세트 수요 둔화는 곧 반도체 출하량 성장 둔화를 의미한다. 더 이상 폭발적인 수량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술적 변화도 크다. 무어의 법칙과 데너드 스케일링의 종말로 전 공정 기술 혁신만으로는 반도체 발전이 어려워졌다. 이제는 전 공정뿐만 아니라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 및 시스템 전체의 혁신 없이는 추가적인 컴퓨팅 발전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시장 진입과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또한 큰 변화를 불러왔다. 미국의 제재는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도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은 레거시 영역에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도 진입했다. 미국의 제재가 강화될 경우 기존의 반도체 밸류 체인은 이중고에 직면할 것이다. 단기적으로 미국 제재에 따른 대중 매출 감소뿐 아니라 중국의 자립도 상승으로 인한 중장기적인 매출 감소도 동반된다.
변하지 않은 것은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 혁신이 여전히 핵심 요소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신규 수요가 창출되고 기술적 해자로 인해 시장의 신규 진입자가 없었던 과거 상황을 더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혁신이 없다면 기술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반도체 공정 기술의 난도가 극한의 정도까지 상승한 지금, 끊임없는 연구개발(R&D) 투자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시장이 성숙 사이클에 진입하게 되면 기존의 시장 참여자들은 저부가가치 영역을 신규 참여자에게 넘겨주고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해 줄어드는 수량 점유율을 가격 상승을 통해 방어한다. 성숙 시장의 성장률은 둔화되지만 시장 선도 기업은 자신만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시장 평균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 반도체 시장 환경은 달라졌지만 끊임없는 기술 혁신과 포트폴리오 확장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외부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은 본질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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