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연금술사’ 거듭난 고려아연… 친환경 제련·폐기물 재생 기반 자원순환 생태계 구축

  • 동아경제
  • 입력 2024년 7월 31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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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트로이카드라이브’ 어디까지 왔나
폐기물을 금·은(유가금속)으로 만드는 기업
1990년대부터 폐기물 활용 ‘녹색제련소’ 추진
친환경 제련→폐기물 유가금속 추출→자원순환
글로벌 자원순환사업 공급망 완성 단계
2050년 600조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사업 준비
고려아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제련은 석유와 철강과 더불어 대표적인 ‘굴뚝산업’으로 꼽힌다. 제조과정에서 탄소와 오염물질 배출이 불가피하고 전력사용량이 많다는 점은 국내 굴뚝산업의 공통점이면서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고려아연은 창립 초부터 제련산업 향후 환경문제가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친환경 제련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고려아연은 제련 잔재물에서 추가적으로 유가금속을 뽑아내 자원화하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폐전자제품 등에서 금속 자원을 추출하는 도시광산사업에 진출해 적극적으로 자원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1990년대 제련 잔재물 활용 모색… 스크랩 등 폐기물 처리·재사용 기술 확보
고려아연 대표 친환경 기술은 ‘반응열원공급관(TSL, Top Submerged Lane)’공법을 꼽을 수 있다. 아연 잔재를 재처리하는 이 기술은 최창영 명예회장 주도로 개발됐다. 구체적으로 TSL공법은 고온휘발용융환원법을 이용해 유가금속을 함유한 잔재 및 연을 함유한 슬래그 등의 중금속으로부터 환경적으로 안정화된 청정슬래그를 제조하고 동시에 유가금속을 거의 100% 회수해 자원화하는 기술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1995년 온산제련소 내 OF1공장을 가동하면서 TSL공법을 상용화했다.

이를 통해 유가금속을 회수하고 청정슬래그로 만들어 시멘트 원료나 건설자재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전 세계 제련소들이 직면한 ‘유가금속 회수’와 ‘잔재처리’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면서 친환경 제련소 구현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평가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의 자원순환 노력은 지난 2012년 전자스크랩처리공장 가동으로 이어졌다. 폐전자제품 등에서 금속자원을 추출하는 도시광산사업에 진출해 더욱 적극적으로 자원순환 생태계 구축에 나서게 된 것이다. 2017년 6월에는 전자스크랩 2공장이 가동에 들어갔다. 1공장과 함께 연간 총 6만 톤 규모 전자스크랩과 산업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구리나 은 등 고부가 유가금속을 회수해 폐기물을 최소화하면서 자원 채굴 수요 감소에도 기여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은을 만드는 회사’로 불리는 이유로도 볼 수 있다.

고려아연은 제강분진사업으로 자원순환사업을 본격화했다. 고철스크랩을 원료로 사용하는 전기로 제강에서는 제강분진(EAF Dust)이 배출되는데 여기에는 20~30%의 아연과 철 분말 성분 등 중요자원이 함유돼 있다. 특히 분진을 통해 아연 제련 원료로 쓰이는 조산화아연을 회수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2016년 4월 제강분진 재생기술을 보유한 영국 징크옥스의 징크옥스코리아를 인수했다. 이 업체는 국내 제강분진을 공급받기 위해 2009년 국내에 진출한 기업이다. 인수 당시 징크옥스코리아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고려아연은 관련 노하우와 경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징크옥스코리아가 영위하는 사업의 성공을 자신했다고 한다.

특히 고려아연은 향후 광석 수급 시황이 심각한 공급부족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응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공급망 이슈를 예감하고 있었던 셈이다. 광석을 대체할 수 있는 조산화아연 활용방안을 모색했고 인수합병 제의에 경제성 검토를 거쳐 실행에 옮겼다. 고려아연은 사명을 ‘징크옥사이드코퍼레이션(Zinc Oxide Corporation)’으로 변경하고 선진화된 기술과 제련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설비 개선과 투자를 단행했다. 고려아연의 기술경쟁력과 적극적인 지원, 구성원들의 변화 노력이 어우러지면서 징크옥사이드코퍼레이션(ZOC)은 경영이 안정화 수순에 들어갔고 고려아연 합류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고려아연 원료 수급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틸싸이클(옛 ZOC) 공장 전경

고려아연 자원순환사업 해외 진출… 미국 도시광산기업 인수
고려아연의 자원순환사업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았다. 국내를 넘어 해외 진출까지 모색했다. 먼저 베트남으로 향했다. 베트남에서는 연간 10만 톤 규모 제강분진이 발생하고 있었고 한창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국가였기 때문에 보다 많은 양을 기대할 수 있었다. 원료 확보가 원활하고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신사업을 전개하기에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2017년 4월 ‘ZOC베트남’이 출범했다.

베트남에 이어 2022년 6월에는 미주대륙까지 영역을 넓혔다. 멕시코 소재 징크인테르나시오날(Zinc Internacional)로부터 제강분진 재활용 업체 ‘GSDK’를 인수한 것. 고려아연이 기존 20만 톤에 11만 톤 넘는 연간 제강분진 처리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그해 9월에는 ZOC 사명을 ‘스틸사이클’로 변경했고 멕시코 GSDK 사명은 ‘스틸사이클에스씨’로 변경했다. 제강분진 리사이클링 역량 강화를 통해 원료 수급 경쟁력을 차별화한 것이다.
고라아연 공급망 디오라마. 폐배터리와 도시광산을 통해 원료를 자원화하는 기술과 인프라를 갖춘 상태다.
2022년 7월에는 자원순환사업 확대 일환으로 미국 전자폐기물 리사이클링 기업인 이그니오홀딩스 지분 73%를 인수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주도한 성장 동력 ‘트로이카드라이브’ 일환으로 3대 축 중 하나인 자원순환사업 관련 자체 인프라가 완성되기 직전인 셈이다. 그해 11월에는 잔여지분을 인수해 이그니오를 완전 자회사로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고려아연은 기업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00% 리사이클 동박을 생산할 수 있는 자원순환 밸류체인 구축의 청신호를 켜 트로이카드라이브 시너지 창출 역량을 극대화했다.

이그니오는 세계 최대 전자제품 소비국인 미국에서 전자폐기물(e-waste)을 수거해 파쇄하고 중간재를 판매하는 도시광산기업이다. 저품위 전자폐기물에서 동과 금, 은, 팔라듐 등 유가금속으로 제련될 수 있는 중간재를 추출하는 독자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독자기술로 추출한 고품위 2차 원료를 통해 제련 생산 능력을 높이고 자회사 ‘케이젬’이 친환경 동박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자원순환사업과 트로이카드라이브 다른 한 축인 배터리소재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겨냥한 포석이다.
고려아연 공급망 디오라마. 고려아연은 배터리 리사이클링을 제련업으로 여기고 사업 본격화를 준비하고 있다.

폐기물부터 EV 폐배터리까지 글로벌 자원순환 공급망 완성 단계
올해는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 영향으로 전기차부터 배터리와 배터리소재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줄었다. 자연스럽게 배터리 리사이클링과 자원순환에 대한 언급도 감소하는 모습이다. 이런 여건에서도 고려아연은 묵묵히 자원순환사업 역량을 발전시켰다. 올해 4월에는 글로벌 스크랩 메탈원료 트레이딩 기업인 ‘캐터맨(Kataman)’ 지분 100%를 인수했다. 트로이카드라이브 한 축인 자원순환사업의 공급망 완성도를 더욱 향상시켰다. 1993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설립된 캐터맨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30만 톤 규모 동과 알루미늄, 철 위주의 스크랩 원료를 거래하는 트레이딩 전문기업이다.

고려아연은 캐터맨의 원료 조달과 이그니오의 소성품 가공, 고려아연의 최종제품 생산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완성했다. 자원순환사업 본격화를 위한 준비를 완료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그니오와 캐터맨의 전자폐기물 공급망을 기반으로 폐배터리 재활용사업에도 진출한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사용 후 남은 배터리 수거와 재활용이 ‘미래 금광’으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 8월 1일 창립 50주년을 맞는 고려아연은 은이나 금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실현시키는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원료인 리튬의 부족과 각종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로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 규모가 오는 2050년 600조 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트로이카드라이브 리사이클링 자원순환사업이 폐배터리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트로이카드라이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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