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는 제44주기 김홍일 장군 추모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거행됐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남궁선 서울지방보훈청장, 이종찬 광복회장, 정형균 육군사관학교장 등 정부 및 보훈 그리고 군 관련 인사와 일반시민 약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일서(逸曙) 김홍일 장군(1898.09.23.~1980.08.08)은 평안북도 용천군 출생으로 정주 오산학교를 수석 졸업한 뒤 1918년 9월 황해도 경신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해로 망명 후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6년 10월 중국 국민혁명군에 입대하여 북벌전쟁, 중일전쟁 등에 참전했고 특히 1931년 상하이 병공창의 병기창 주임 근무 시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도와 한인애국단 이봉창 의사의 동경 일왕 폭탄 투척 의거(1932.01.08)와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1932.04.29) 등에 폭탄을 제공하며 침체기를 겪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크게 기여했다.
1945년 김구 주석의 권유로 한국광복군 사령부 참모장에 부임하여 한·미 연합 국내 상륙작전을 준비했고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창군 최초 장군으로 임관 후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참모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전쟁 발발 시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6일간의 한강방어선 전투를 통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며 미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 확보에 막대한 공을 세웠고, 육군 제1군단장으로는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여 국군의 반격작전을 개시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등 대한민국 수호에 앞장서 큰 전공을 세웠다.
1951년 중장 예편 후 주중화민국 대사, 외무부장관, 재향군인회장, 국회의원, 광복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김홍일 장군은 1980년 8월 8일, 향년 83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김홍일 장군의 공로를 인정하여 1951년 태극무공훈장,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고 1998년 8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2015년 1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는 지난 2023년 김홍일 장군의 유족을 만난 백범김구선생의 손녀 사위인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주도로 설립됐다. 김 회장은 김홍일 장군 서거 이후 40여 년이 지나도록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지 않아 고인의 훌륭한 업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념사업회 설립을 약속하며 이를 위한 사재 출연 및 제반 비용을 모두 후원했다.
또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와 김홍일 장군이 상하이 병기창 주임으로 근무 당시 폭탄을 제공했던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의 참여와 지원을 이끌어내 세 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유관 단체가 동참하는 더욱 의미 있는 기념사업회를 설립할 수 있었다.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 측은 “올해 처음으로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추모식을 거행할 수 있게 되어 김홍일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김홍일 장군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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