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매달 일정하게 주는 돈이다. 기존 사회복지제도가 먹고살기 힘든 사람이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돈을 지급한다면,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준다는 점이 다르다.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 조건 없이 먹고살 돈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자기 소질을 개발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먹고살려고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게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고 각자가 자신이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들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또 자기 소질을 찾아 발전시키는 사람보다 그냥 놀고먹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본다.
7월 말, 실험 결과 발표
사람들은 매달 그냥 돈이 들어오면 어떻게 행동할까.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고,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정책 실험을 진행했다. 여러 번 정책 실험을 하면서 점점 조사 방법, 결과 해석 등이 정밀하게 개선되고 있다. 미국 오픈리서치사도 많은 지원금을 받아 기본소득 정책 실험을 했다. 그리고 올해 7월 말, 3년간 이어진 기본소득에 관한 1차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실험에서는 1000명에게 3년간 매달 1000달러(약 135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21~40세가 대상이었고, 소득별 효과를 파악하고자 빈곤선(2019년 기준 1인 가구 소득 1만2490달러·약 1720만 원, 4인 가구 소득 2만5750달러·약 3540만 원) 이하 소득을 얻는 저소득층, 빈곤선의 2배 소득을 올리는 중소득층, 빈곤선의 3배 소득을 올리는 고소득층으로 실험 대상을 구분했다. 그런데 이들의 변화가 기본소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 환경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책 효과를 확실히 파악하고자 별도로 2000명의 사람에게는 매달 50달러(약 6만7000원)씩 지급했다. 매달 50달러는 실제 도움이 되는 금액은 아니다. 단지 기본소득을 받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자료 수집 비용이었다. 실제 이 기간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활동이 평상시와 완전히 다를 때였다. 단순히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는 별 의미가 없고, 기본소득을 받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3년간 매달 기본소득 1000달러를 받았을 때는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보자. 일단 취업률과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 매달 50달러씩 받은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줄었다. 기본소득 수령자 중에는 취업자가 2% 더 적었고, 일하는 시간도 매주 1시간 20분 짧았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을 더 안 한다. 그런데 이건 나이와 소득 수준에 따라 효과가 달랐다. 저소득층과 중소득층의 노동시간은 별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고소득층의 노동시간은 줄었다. 기본소득은 고소득층으로 하여금 일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컸다. 그리고 30, 40대는 노동시간에 별 차이가 없었고, 20대 노동시간은 줄었다.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일 외에 다른 활동을 하느라 노동시간이 줄었을 수도 있다. 단,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이 더 신중하게 오랫동안 일자리를 고르기는 했는데, 결과적으로 더 나은 직장을 얻지는 못했다.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질 좋은 직장으로 레벨업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병원 이용률 늘어나
물론 개별 사례는 존재한다.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더 교육받고 좀 더 좋은 직장을 구한 경우, 기본소득으로 자신의 꿈에 더 다가간 경우가 적잖았다. 하지만 통계적으로는 의미가 없었다. 개별 사례일 뿐, 전반적인 효과는 아니라는 의미다. 건강 측면을 보면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병원을 더 많이 다녔다. 일반병원과 응급실 방문, 치과 치료 등 모든 면에서 이용률이 늘어났다. 그런데 전반적인 건강 수준이 높아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돈이 생기니 병원을 더 많이 가기는 했는데, 건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처음 1년간은 스트레스 감소 등 정신건강이 좋아졌다. 하지만 처음 1년뿐이었다. 2년차부터는 원래 수준으로 돌아왔다. 소비를 보면 음식, 교통, 집 임차료 같은 지출이 늘었다. 기본소득으로 교육을 더 받은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소수였다. 전체적으로 교육비 지출이 늘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저소득층 및 중소득층에서 기본소득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돈,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사주는 돈이 크게 증가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만 했던 이들이 돈이 생기자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비해 고소득층은 기본소득이 생겼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지원하는 금액이 늘지는 않았다.
이 오픈리서치의 기본소득 실험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단 기본소득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는 기본소득으로 인생이 바뀌기도 했고, 훨씬 나아진 삶을 살기도 했으니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기본소득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는 그런 변화가 발생한 경우도 있지만 굉장히 소수이고 전체적으로는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만 도와주면 되지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건 낭비라고 얘기할 테다.
그럼 이 오픈리서치의 기본소득 실험이 투자 측면에서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나는 이 보고서를 보고 투자와 관련된 확실한 시사점을 얻었다. 앞에서 한 달에 1000달러씩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은 음식, 교통, 레저 활동, 집세 등에 돈을 사용했다고 했다. 그런데 각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지출 형태가 다르게 나타났다. 저소득층과 중소득층은 음식과 교통 부문에 더 많은 돈을 썼다. 저소득층은 그동안 부족했던 먹거리를 사 먹었고, 중소득층은 생계유지와 관계없이 먹고 싶었지만 비싸서 먹지 못했던 음식을 샀다. 그리고 그동안 버스를 타다가 우버 등을 이용하는 등 교통과 관련해서도 지출이 크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고소득층은 어땠을까. 고소득층은 기본소득을 받아도 음식 지출이 거의 늘지 않았다. 이들은 평소에도 먹거리는 충분히 사 먹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해서 음식을 더 사 먹지는 않았다. 교통도 마찬가지다. 이미 자기 차가 있고 필요하면 우버, 택시를 이용해왔다. 돈을 더 준다고 교통비가 늘지는 않는다. 고소득층에서 증가한 지출은 단 하나였다. 집 렌트비다. 고소득층은 기본소득으로 다른 지출은 늘리지 않았다. 오직 집 렌트비 하나만 크게 증가했다. 고소득층은 돈이 더 들어오면 더 좋은 집에서 살려고 했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이 들어오면 보통 사람은 더 많이 먹고, 더 좋은 교통수단을 이용해 더 자주 돌아다닌다. 반면 어느 정도 사는 사람은 기본소득이 들어오면 더 좋은 집에서 살려고 한다. 사람들이 더 좋은 집에 살려고 몰리면 그 효과는 분명하다. 부동산값이 크게 오른다. 모든 집값이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소득층용 집값은 오르지 않는다. 중소득층 집값도 효과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고소득층이 이용하는 집값은 크게 오를 것이다.
부동산 수요 증가
나는 그동안 기본소득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모든 사람에게 돈을 풀어서 발생하는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이라고 생각해왔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는 현상인데, 모든 상품의 가격이 동일하게 오르지는 않는다. 월급은 인플레이션보다 덜 오르고, 부동산과 주식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오른다.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부동산값이 오른다고 봤지만 어디까지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상승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오픈리서치 실험 결과를 보니 부동산값 상승의 원인은 인플레이션만이 아니다. 어느 정도 사는 사람은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그 돈으로 더 좋은 집에서 살고자 한다. 부동산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것이다. 부동산값은 인플레이션으로도 오르고, 수요가 증가해서도 오른다. 이러면 기본소득이 주어질 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부동산값이 크게 오른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될까, 시행되지 않을까.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찬성하는 사람도 많은 게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변화가 생기면 기본소득이 주어질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나로서는 기본소득이 시행될 때 투자 방침 한 가지가 만들어졌다.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부동산을 구입할 것이다. 일반 부동산은 아니고, 고소득층이 선호할 만한 주거용 부동산을 살 생각이다. 오픈리서치의 기본소득 결과 보고서를 읽고 내린 결론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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