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클로디아 골딘 교수
유연한 일자리 늘리는 것이 대안
남성 역시 노동구조 변화에 힘 보태야
2017년 11월 17일 AI 기반 스타일링 서비스 기업 스티치픽스가 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스티치픽스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카트리나 레이크는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상장식에 14개월 된 아들을 안고 등장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34세의 나이에 상장을 주도한 최연소 여성 CEO이자 일과 가정의 균형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스티치픽스는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미국에서도 드물다. 평생 여성 노동시장을 연구해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200년간 임금 데이터를 수집해 성별 소득과 고용률의 변화 추이를 살펴본 결과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늘어도 성별 임금 격차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며 “남성이 오랜 시간 일할수록 보상이 급격히 늘어나는 탐욕스러운 일에 매달리는 동안 여성은 자녀를 출산하고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7월 2호(397호)에 게재된 인터뷰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의 원인은 무엇인가.
대학 졸업 직후 남녀의 임금 수준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시간이 흘러 졸업 후 10년 정도가 되면 상당한 임금 격차가 나타난다. 이런 변화는 대개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한두 해 뒤에 시작되며 대부분 여성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있는 경우 커리어의 어느 순간 궁극적인 시간 충돌이 발생한다. 누군가는 급한 일이 있을 때 지체없이 사무실을 떠나 집에 올 수 있는 ‘온콜(on-call)’ 임무를 맡아야 한다. 부부가 온콜 임무를 잘 분담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많은 경우 일이 너무나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은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 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한다. 부부 사이에 업무를 ‘특화’하면 이 탐욕스러운 일을 유지하며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 부부 중 한 명은 집에서의 온콜 임무를 맡고 다른 쪽은 직장에서 온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어떤 임무를 맡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젠더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커리어를 희생하고 가정일에 집중하기로 하는 쪽은 대체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더 높은 수준의 성평등과 부부간 공평성을 이루려면 노동이 구조화돼 있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유연한 일자리가 더 많아지고 더 생산적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탐욕스러운 일자리가 아니라 시간 유연성이 있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과 돌봄의 시스템이 제고돼야 한다. 변호사 업무는 대표적인 탐욕스러운 일로 시간을 얼마나 투여하느냐가 보수의 막대한 차이로 이어진다. 로스쿨을 졸업한 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약간 적은 시간 일하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졸업 후 15년이 되면 전일제로 일하는 여성조차 남성보다 상당히 적은 시간을 일하고 임금 격차도 크게 벌어진다. 여성 변호사의 소득 중앙값은 남성 1달러당 78센트 정도다. 반면 약사 직종은 성별 소득이 변호사에 비해 더 동등할 뿐 아니라 소득 자체도 높은 편이다. 약사는 오래 일한다고 해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에 비해 시간당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 약사 업무가 더 표준화되고 다른 약사가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 인력이 돼 줄 수 있는 직종에서는 모두가 득을 본다. 시간 요구의 밀도와 강도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남녀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데….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남성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남성이 육아 및 기타 무급의 가족 노동에 여성과 동등한 시간을 투입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탐욕스러운 노동이 주된 이유지만 일부는 경제 변화가 매우 빠른 사회에서 발생하는 젠더 갈등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 역시 여기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20세기 후반 한국만큼 빠른 변화를 겪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미국은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세대가 가져온 변화에 이전 세대가 적응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적응할 여력이 적었다. 저출산 문제와 성별 격차를 해결하려면 기성 세대와 남성, 기업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이 회사에 요구하는 것을 남성도 똑같이 요구해야 한다. 회사가 탐욕스러운 노동구조를 바꾸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을 바꿔 남성들도 집에서 더 많은 책임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여성들이 직장에서 더 많은 책임을 맡을 수 있다.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기업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고성과자 직원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문 서비스 직종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직원이 맺고 있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가 중요할 뿐 아니라 그의 교육과 직무 훈련에 기업이 비용을 들여 투자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크레디트스위스와 같은 월가의 거대 기업들도 젊은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주말과 저녁을 보장하고 유급 안식년을 주고 휴가 사용을 의무화하고 기간이 덜 걸리는 승진 경로를 만드는 등의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몇몇 컨설팅 회사와 회계법인은 젊은 직원들의 장거리 출장을 줄이는 정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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