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요구불예금 이달 3.2조 줄고
“부동산 매수” 가계대출 2.4조 증가
증권사 예탁금은 8200억 늘어나
전문가 “섣부른 빚투-영끌은 위험”
직장인 이모 씨(38)는 은행에 넣어뒀던 여윳돈을 증권 계좌로 옮긴 뒤 최근 크게 하락한 반도체 종목들을 분할 매수하고 있다. 이 씨는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은행 상품에서 높은 수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당분간 모아둔 자금과 마이너스 통장을 활용해 주식 투자를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고 이에 발맞춰 시장금리도 떨어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은행에 넣어둔 대기성 자금이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다.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아파트를 사거나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요구불예금 이달 들어 3조2000억 원 감소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개인 요구불예금 잔액은 8일 기준 358조9219억 원이었다. 이는 전월 말 대비 3조2760억 원 줄어든 수준이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통장으로 아직 뚜렷한 용도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을 뜻한다.
시중은행의 대기성 자금이 계속 빠져나가는 것은 은행권 금융상품의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이 다른 투자처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이달 2일, KB국민은행은 5일부터 주요 예·적금 금리를 최대 0.2%포인트 인하했다. 한 증권사 자산관리전문가(PB)는 “시장 금리가 하락하면서 고객들이 예적금 수익률로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더 넓은 아파트로 갈아타거나 보다 공격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분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부동산 매수·주식투자 기회 노려
금융권에서는 시장의 부동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집을 사는 데 쓰였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8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18조2130억 원으로 전월 말 대비 2조4747억 원 증가했다. 현재 추세대로 가계대출이 늘어난다면 지난 한 달 증가 폭(7조6000억 원)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서울 양천구 소재 아파트를 매수한 문모 씨(40)는 “서울 주요 지역 집값이 계속 오름세여서 더 늦기 전에 경기 용인시 집을 팔고 서울로 가기로 했다”며 “대출 금리가 많이 내려간 상태라 생각보다 추가 부담이 그리 크진 않다”고 말했다.
일부 요구불예금은 주식 시장으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 코스피가 전일 대비 8.77%나 떨어졌던 이달 5일에는 하루 만에 2조366억 원의 요구불예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같은 날 증시 대기성 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 잔액은 하루 만에 5조6197억 원이 증가한 바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권의 대기성 자금이 주식, 부동산 시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당분간 금리를 내린다는 전망이 우세하고 이에 따라 주식, 부동산 가치가 더 상승할 것이라 보는 분위기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영끌’ ‘빚투’ 열풍이 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동산의 경우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추가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고 국내 증시 역시 외국인들의 투자 유인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두 가지 자산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미국, 한국의 금리 인하가 기정 사실로 다가왔다 해도 빚을 내 투자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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