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플랫폼 10곳중 4곳 ‘완전자본잠식’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2일 03시 00분


점유율 상위기업 작년 재무상태 분석
적자 계속땐 ‘제2 티메프’ 사태 우려


국내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 10곳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4곳이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금을 이미 다 소진한 채 적자가 쌓여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커머스 업계의 재무 건전성에 ‘노란불’이 들어온 만큼 티몬·위메프와 같은 대규모 미정산 사태 재발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동아일보는 기업 분석 전문가 박동흠 회계사,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회계사 등과 국내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 10곳의 작년 기준 재무상태를 분석했다. 시장점유율 1∼10위 이커머스 플랫폼 중 금융감독원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쿠팡, 11번가, 지마켓, 쓱닷컴과 각 전문 분야 1∼2위 플랫폼인 무신사, 에이블리(이상 패션), 컬리, 정육각(이상 식료품), 발란(명품), 오늘의집(인테리어)이다.

이 중 에이블리, 정육각, 발란, 오늘의집 등 4곳이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기업이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것은 향후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태의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둘러 추가 투자를 유치하거나,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 누적된 손해(결손금)를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이익을 내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의 경우 고객과 상품(서비스) 제조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재무상태가 나빠도 당장은 버틸 수 있지만 위험 부담은 더 크다. 티몬·위메프처럼 작은 균열이 생긴 뒤 이용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현금 흐름이 순식간에 막혀 치명상을 입을 수 있어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투자를 받기 위해서 적자를 감수하고 공격적으로 성장하는 게 스타트업의 특징”이라면서도 “스타트업도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이익 관리가 필수적이지만 이커머스 업체들 중에는 그러지 못한 곳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커머스 아슬아슬한 적자경영… 감사보고서에 “존속 능력 의문”


[‘제2의 티메프’ 경보]
명품직구 선두 ‘발란’ 최근 3년 손해… 패션 ‘에이블리’도 완전자본잠식
‘규모의 경제’ 내세워 몸집 불리기
전문가 “추가 투자 받기 위해서라도… 재무구조 안정적으로 바꿀 필요”


“계속 기업의 존속 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올 4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위메프의 2023년 감사보고서에는 이 같은 회계법인의 우려가 담겼다. 작년 감사보고서를 공시하지 않은 티몬의 경우 2022년 감사보고서에 똑같은 문구가 담겼다.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라 이미 예견된 사고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이 문구는 명품 직구 이커머스 플랫폼 발란의 작년 감사보고서에서도 발견된다. 티몬·위메프와 같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재무제표는 ‘상당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는 뜻이다.

● 이커머스 업체들의 아슬아슬한 적자경영


11일 동아일보는 기업 분석 전문가 박동흠 회계사,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회계사 등과 함께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대표하는 10개 업체의 재무 상태를 분석했다.

명품 직구 플랫폼 1위 발란의 최근 3년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였다. 3년간 사업을 하면서 손해만 봤다는 의미다. 발란이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대금은 2022년 84억3943만 원에서 지난해 107억1368만 원으로 늘었다. 그런데 작년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이른바 여유자금은 34억 원이었다.

매출도 2022년 891억3121만 원에서 작년 392억4515만 원으로 줄었다. 박 회계사는 “매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예수금이 늘어난 건 정산 대금 지급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는 걸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발란 측은 “작년 4분기(10∼12월)부터 올해 상반기(1∼6월)까지 흑자를 냈기 때문에 올해 말 ‘불확실성’이란 단어가 쏙 들어갈 것”이라며 “10월에는 알리바바 등 여러 회사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초신선 축·수산 거래 플랫폼인 정육각은 여유 자금이 부족한 기업으로 꼽혔다. 정육각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년 전보다 97% 감소한 6614만 원이었다. 정육각이 2022년 4월 자금을 투입해 인수한 초록마을은 지난해 86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정육각 관계자는 “성장 가능성을 다시 인정받아 올해 3월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1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했다.

패션 앱 이용자 수 2위 에이블리는 최근 5년간(2019∼2023년) 줄곧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지난해 에이블리가 보유한 여유 자금은 793억 원으로 자본잠식 규모(―543억 원)보다 컸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해 자본잠식 상태라 해도 현금 자산을 많이 보유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지금까지 누적 223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하반기에도 추가 투자 유치가 계획돼 있다”고 했다.

인테리어·가구 앱 1위 오늘의집 운영사 버킷플레이스의 자본잠식 규모는 지난해 기준 ―7989억 원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문가들은 버킷플레이스의 경우 완전자본잠식 상태이기는 하지만 당장 유동성 위험이 높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32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할 때 추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상환전환우선주 형태로 받아 ‘결손금’이 실제보다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현재 여유자금도 3000억 원이 넘는다. 버킷플레이스 관계자는 “1년 내로 갚아야 하는 돈은 1675억 원이어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규모의 경제’ 성장 공식에 빨간불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아온 쿠팡과 패션 앱 1위 무신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기업들과 달리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SSG닷컴, 지마켓, 11번가 등 대기업 계열 이커머스 플랫폼들도 수년째 적자를 내왔음에도 재무 상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새로운 경영환경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커머스 회사들은 지금까지 ‘계획된 적자’와 같은 표현을 써가며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해 왔다. 사용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의 특성상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쓰더라도 이용자나 거래액을 빠르게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어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힘들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이커머스 업체가 대규모 마케팅을 앞세워 매출 경쟁을 해왔다”며 “상장만 하면 적자를 바로 메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몸집 불리기에 치중한 관행이 적자가 당연해진 현재의 이커머스 생태계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제2의 티몬·위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과거 이머커스 산업 생태계의 성장 공식을 바꿀 때라고 지적했다. 실제 판매자와 소비자들도 이커머스 업체를 선택할 때 거래 안전성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재무 구조를 안정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 회계사는 “완전자본잠식이 오랫동안 이어진 곳들은 반드시 추가적인 투자 등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며 “성장성이 둔화되고 수익성마저 떨어지면 대출은 받기 어려워지고 투자는 안 들어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이커머스#적자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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