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HUG의 보증한도 강화 요청 16차례 묵살…전세 사기 3.9조 피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3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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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서울시내 한 부동산에 전세 거래 가격표가 게시돼 있다. 2024.08.07. 뉴시스
오전 서울시내 한 부동산에 전세 거래 가격표가 게시돼 있다. 2024.08.07. 뉴시스
전세 보증금이 주택 가격의 90%를 넘는 경우에는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가입 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요청을 국토교통부가 16차례나 묵살하며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이 밝혔다. 전세 보증보험이란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공사가 대신 돌려주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받아내는 제도다.

당시에는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보험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주택가격의 90%가 넘는 높은 전세값에 계약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악성 임대인이 이점을 이용해 전세 보증금으로 주택을 사들인 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무자본 갭투자 사기’도 이어지고 있었다.

공사는 전세 보증보험이 전세 사기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입 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국토부가 제대로 된 검토 없이 묵살한 것이다. 국토부의 늑장 조치로 최소 3조 9000억 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감사원은 보고 있다.

● 국토부, “세입자 보호해야 한다”며 ‘전세 사기’ 방치

감사원은 13일 공개한 ‘서민 주거 안정시책 추진실태’ 감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사는 2013년 9월 전세보증 보험을 출시하면서 ‘아파트 전세금이 주택 가격의 90% 이하 수준이어야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정했다. 그런데 공사는 2017년 2월 ‘아파트 전세금이 주택 가격의 100% 수준이어도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있다’며 가입 범위를 확대했다. 세입자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국토부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공사는 2020년 9월부터 총 16차례에 걸쳐 “전세 사기 예방을 위해서는 가입 요건을 ‘주택가격의 100%’에서 ‘90%’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국토부에 건의했다. 공사는 2021년 5월 세 모녀가 서울 강서구와 관악구 등의 빌라 500여 채를 자기 자본 없이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인 뒤 보증금을 빼돌린 ‘세모녀 전세 사기’ 사건 이후로 국토부에 “전세보증이 전세 사기에 악용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공사는 2021년 10월에는 “앞으로 전세보증 사고로 수조 원의 보증금을 공사가 세입자에게 대신 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라고 보고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하지만 국토부는 “세입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막연한 이유를 들어 공사의 건의 사항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국토부는 수도권 곳곳에서 ‘대규모 전세 사기’ 피해가 발생한 뒤인 2023년 2월에야 공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한도를 ‘아파트 가격의 100%에서 90% 이하’로 낮췄다.

감사원은 국토부가 2021년 10월에만 전세보증 한도를 강화했다면 최소 3조 9000억 원에 이르는 ‘전세 보증금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와 공사가 전세 사기로 수사요청한 임대인 236명의 사례를 감사원이 점검한 결과, 이들 236명이 세입자로부터 받은 평균 전세 보증금은 주택 가격의 95.7%에 달했다. 국토부가 전세 보증금이 주택 가격의 90%를 넘는 경우에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제도를 손봤다면 이런 전세 보증금 사고를 막을 여지도 있었던 것이다.

● ‘무자본 갭투기’ 악성 임대인 보증보험 가입 막을 수단도 마련 안해

공사는 ‘무자본 갭투기’를 하는 악성 임대인의 전세 보증보험 가입을 막기 위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가 전세보증금을 집주인 대신 갚아준 사례를 감사원이 점검한 결과 보증금 액수 기준으로 상위 10명의 임대인이 평균 305건(712억 원)의 ‘전세 보증금’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10명은 평균 455건(899억 원)의 전세보증보험에도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민간 임대주택의 79%가 국토부나 지자체의 ‘전세 사기’ 관련 조사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국토부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지자체에 ‘3회 이상 공사가 전세금을 대신 납부한 경우’ 등 특정 조건에 해당하는 민간임대주택만을 점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임대주택이 많이 있는 서울시 강서구, 관악구, 인천 미추홀구 3개구를 점검한 결과 전체 4만 34건의 임대차계약 중 5090건(12.7%)이 구청에 신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전세 보증사고 급증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해 대규모 전세사기를 유발하거나 공사의 재정손실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며 국토부에 주의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공사를 상대로는 “악성 집주인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보증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국토부#hug#전세 사기 피해#보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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