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코리아, EV 배터리 정보 공개
‘LG엔솔·SK온·CATL·파라시스’ 제품 탑재
화재 난 파라시스 배터리, 비교적 최신 모델에 적용
소형 EV 한국산·럭셔리 EV 중국산
전기차 무상점검 14일부터 진행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국내 업계와 소비자 요구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셀 공급사를 공개하기로 했다.
벤츠코리아는 13일 공식 홈페이지에 전기차 차종별 배터리 셀 공급사 정보를 공개했다. 이와 함께 소비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벤츠 전기차에 대한 무상점검을 오는 14일부터 진행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무상점검은 전국 75개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이뤄진다.
최근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해서는 당국 조사에 협력 중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벤츠는 이번 화재사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사고 조사와 수습을 위해 독일 본사에서 직원 다수를 파견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 화재가 난 전기차 EQE는 내연기관 모델로 치면 E클래스와 동급 세그먼트로 분류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은 E클래스가 가장 많이 팔리는 국가다. 그런 만큼 독일 본사 차원에서도 한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EQE에 대한 기대감은 남달랐다. 한국 소비자를 핵심 타깃으로 개발된 전기차로도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EQE 화재사고를 계기로 벤츠 전기차뿐 아니라 국내 시장 전기차 전체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근본 원인을 파악해 적절한 후속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고 조사나 감식과 별개로 인도적 차원으로 피해 복구와 피해 주민 생활 정상화를 위한 지원금 45억 원을 전달하기로 했다.
벤츠코리아가 공개한 배터리 정보를 살펴보면 벤츠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한 제조사는 한국 업체 2곳(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중국 업체(CATL, 파라시스) 2곳 등 총 4곳이다. 먼저 벤츠 전기차 출시 순서는 EQC를 시작으로 EQA와 EQB, EQS, EQE, EQS SUV, EQE SUV, 마이바흐 EQS SUV 순이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의 경우 벤츠 브랜드 첫 전기차 모델로 선보인 EQC 1종에만 탑재됐다. 현재는 EQC가 단종됐기 때문에 초창기에만 파트너십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 전기차인 EQA 배터리 물량은 CATL이 가져갔다. EQA를 처음 선보인 2020~2021년은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이슈가 한창이던 시기다. 당시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은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유럽 첫 생산거점인 독일 공장에 이어 헝가리 공장 설립을 발표하기도 했다. 벤츠가 CATL과 파트너십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시기로도 볼 수 있다.
이후 출시한 EQB에는 SK온 배터리가 장착됐다. 걸출한 업체인 CATL을 두고 다른 배터리 제조사와 손잡은 것이 이례적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공급망 이슈가 업계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로 다양한 제조사들이 공급망 이원화 또는 다변화를 추진하는 추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할 수 있다. 벤츠와 CATL의 관계는 주력인 럭셔리 전기차 분야 협력을 강화하면서 더욱 긴밀해진 모습이다. 플래그십 세단 전기차 모델인 EQS 배터리를 CATL이 공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CATL은 주행거리가 짧은 대신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벤츠 EQS를 통해 그동안 한국 기업이 주력해온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 시장 진출을 알렸다. 앞서 CATL이 EQA에 공급한 배터리는 삼원계 NCM523 제품이고 EQS용 배터리는 하이니켈 삼원계 NCM811 제품이다. 니켈 함량 차이가 크다. EQE의 경우 지난 2022년 독일 현지에서 만난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개발 총괄은 EQS와 마찬가지로 EQE에도 CATL이 공급한 배터리가 탑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현지에서 EQE를 시승하기도 했다. 묵직하면서 부드러운 주행감각과 절제된 외부 유입 소음까지 다양한 장점이 인상적인 모델이었다. 여기에 EQE를 통해 중국산 하이니켈 배터리를 처음 경험할 수 있었는데 효율적인 부분에서 국산 배터리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생제동에 의한 에너지 충전이 더 쉽게 이뤄지는 것 같아 의외로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스타진스키 벤츠 전기차 개발 총괄이 잘못 말한 것인지 국가별로 차이가 있는 것인지 EQE는 엔트리 트림인 EQE300에만 CATL 배터리가 탑재되고 다른 모델은 모두 파라시스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벤츠코리아가 이번에 공지했다. 파라시스가 이번에 불이 난 EQE에 장착된 배터리 제조사다.
EQE 이후 출시된 EQS SUV는 CATL 배터리가 탑재되고 EQE SUV는 트림에 따라 CATL과 파라시스 제품이 장착되는 것으로 나왔다. 벤츠 전기차 최상위 모델에 해당하는 마이바흐 EQS SUV도 CATL 배터리가 얹힌다.
차종별 배터리 제조사 흐름을 보면 전반적으로 벤츠가 전기차 분야에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모습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해보고 CATL을 넘어 10위권 배터리 제조사인 파라시스까지 손을 뻗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탈(脫)한국산 배터리 흐름을 보인다. CATL의 경우 시기적으로 보면 정식으로 공급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다른 모델을 통해 상품성과 안전성을 꽤 심도 있게 검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파라시스 배터리는 CATL 배터리를 통해 중국산 배터리 성능을 확인한 후 CATL과 비슷한 눈높이로 파라시스 배터리 도입을 결정한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비슷한 제품이면 세계 1위 브랜드 CATL보다 파라시스 제품 가격이 낮을 것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모든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가절감을 고민하게 된다. 벤츠 역시 마찬가지다. 결과론적인 관점이긴 하지만 배터리는 전기차에서 가장 비중이 크면서 안전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품인데 원가절감에 집중한 나머지 벤츠가 다소 섣부르게 부품 제조사를 선정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원가절감의 함정으로도 볼 수 있다. 럭셔리 자동차를 대표하는 벤츠에게 다른 가치를 침해하는 수준의 과도한 원가절감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와 완성차 및 수입차의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계기로 전기차 구매자의 권리가 개선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를 구입할 때 배터리 브랜드까지 확인하고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조금 더 멀리 보면 가까운 미래에는 배터리 제조사의 기술력은 물론 브랜드도 차를 구매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배터리계 에르메스나 샤넬, 배터리를 보고 사는 전기차 등의 상상이 가능하다. 삼성SDI의 경우 이를 예견했는지 일찌감치 자체 배터리 브랜드 ‘프라이맥스(PRiMX)’를 론칭하고 브랜딩을 전개해왔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배터리 브랜드를 운영 중인 배터리 제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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