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Z세대, 들고 일어나다…케냐가 촉발한 시위 물결[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5일 10시 00분


아프리카 젊은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케냐에서 Z세대가 주도한 시위가 증세 철회라는 성과를 거두자, 이에 자극받은 나이지리아와 우간다 젊은이들도 거리로 뛰쳐나왔죠.

나라마다 시위를 촉발한 요인은 다릅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죠. 먹고 살기 힘든 젊은이들이 신뢰를 잃은 지도자에 대항해 들고 일어났다는 겁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번지고 있는 이 시위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요. 오늘은 불붙는 아프리카 Z세대 시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8월 1일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8월 1~10일 전국적으로 진행된 이 시위의 핵심 구호는 ‘배고프다’였다. AP 뉴시스
8월 1일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8월 1~10일 전국적으로 진행된 이 시위의 핵심 구호는 ‘배고프다’였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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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세’에 폭발한 케냐 Z세대
2024년 6월 25일, 케냐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Z세대(1997~2010년생) 시위대가 수도 나이로비에서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해 국회의사당을 습격했습니다. 세금 인상을 골자로 한 재정법안이 국회에서 막 과반 찬성을 받아 통과된 직후였죠. 국회의원들은 비밀 터널을 통해 도망쳤습니다. 의회당 창문이 깨지고, 의자가 나뒹굴고, 건물에 불이 붙었습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했고, 이날만 14명이 사망했습니다.

케냐 Z세대를 각성케 한 건 지난 5월 케냐 정부가 발표한 재정법안입니다. 그동안 세금이 붙지 않았던 빵과 금융서비스에 16%, 식용유에 25%의 소비세를 새롭게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죠. 과자·연료·휴대전화·통신요금 등에 붙는 각종 세금도 대폭 올리기로 했습니다. 생리대·기저귀 세금 인상도 예고됐고요.

6월 25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점거하자 경찰은 최루탄과 실탄 사격으로 맞섰다. 이날 시위에서만 14명이 사망했다. AP 뉴시스
6월 25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점거하자 경찰은 최루탄과 실탄 사격으로 맞섰다. 이날 시위에서만 14명이 사망했다. AP 뉴시스
사실 케냐 정부로선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반 정부부채가 GDP의 73%까지 불어나면서, 이제 연간 정부 수입 중 무려 60%가 이자 갚는 데 들어갑니다. 교육이나 건강을 위해 써야 할 돈이 이자로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저금리였던 이전 정부 시절, 인프라를 건설한다며 중국과 국제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약 800억 달러)을 빌려왔던 게 재정 파탄을 초래했죠. 이대로 가면 나라가 채무불이행에 빠질 판. 윌리엄 루토 대통령은 증세를 통해 연간 20억 달러 세금을 더 걷어, 빚을 갚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는 올해 1월 9억 달러 대출 추가제공을 결정한 IMF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죠.

청년들은 서민증세안에 즉각 분노했습니다. 케냐는 전체 실업률은 12.7%이지만 청년층(15~34세) 실업률은 무려 67%에 달하죠. 일자리가 없어 생계비 위기에 내몰린 이들은 빵과 식용유 값 인상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국회의원들에게 재정법안 반대를 요구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X와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RejectFinanceBill2024’ 해시태그를 공유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AI 기술을 이용해 만든 이미지·노래·영상이 시위를 알리는 데 활용됐고요. 자발적인 청년들의 결집이 6월 중순 전국적인 시위 물결을 만들어냅니다.

시위 초반 경찰의 강경진압과 시위 참가자 사망 소식은 시위를 더욱 과격하게 만듭니다. 6월 25일엔 전국 35개 주에서 수천 명이 거리로 나섰죠. 루토 대통령의 고향에선 그의 측근들 재산이 공격받았습니다. 나이로비 의회 점거 사건 이틀 뒤, 결국 루토 대통령은 양보안을 내놓습니다. 재정법안은 철회하고 거의 모든 장관을 해임했죠.

6월 27일 케냐 정부는 증세안을 철회했지만, 시위대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지금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7월 23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행진 중인 시위대. AP 뉴시스
6월 27일 케냐 정부는 증세안을 철회했지만, 시위대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지금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7월 23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행진 중인 시위대. AP 뉴시스
하지만 한번 거대해진 불길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시위대의 구호는 ‘루토 대통령 사임’으로 바뀌었죠. 새 내각 선서식이 열린 8월 8일에도 반정부 시위대는 ‘나네나네(88)’ 시위를 벌였습니다. 경찰은 또다시 최루탄을 발사했고요. 케냐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두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시위에서 총 60명이 사망했습니다.

세금 인상 철회에도 시위가 멈추지 않는 건 그만큼 케냐 젊은이의 좌절과 분노가 크단 뜻입니다. 어찌 보면 증세안은 낙타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였을 뿐이죠. 지긋지긋한 가난과 불평등, 만연한 부패와 무능한 지도층에 지친 케냐 청년들은 지금 당장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는 그 이웃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3배로 뛴 쌀값, 배고파 못 살겠다
아프리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동시에 가장 젊은 대륙입니다. 인구의 70%가 30세 미만이죠. 하지만 아프리카 대통령의 평균 연령은 62세입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나이 든 리더는 아프리카 Z세대를 좌절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최대 인구대국(인구 2억1850만명) 나이지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 나이지리아 청년들은 악명높은 경찰 특수강도수사대(SARS)의 해체를 요구하는 ‘#EndSARS‘ 시위를 벌였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정권은 바뀌지 않았고, 2023년 대선에선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 볼라 티누부가 승리했죠.

하지만 증세안 철회에 성공한 이번 케냐 시위는 나이지리아 청년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8월 1~10일 전국적으로 열린 나이지리아 시위의 슬로건은 ‘나쁜 정부 종식(#EndBadGovernance)’.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배고프다”라는 외침이 이어졌습니다. 소외된 북부 지역에선 폭력시위와 함께 러시아 국기가 등장하기까지 했습니다. 보안군의 총에 사망한 시위 참가자만 최소 13명에 달한다죠.

8월 2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시위참가자가 ‘우리는 배고프다’라며 살인적인 물가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AP 뉴시스
8월 2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시위참가자가 ‘우리는 배고프다’라며 살인적인 물가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AP 뉴시스
“굶어 죽는 것보다는 거리에서 시위하며 죽는 게 낫습니다.” 한 시위자는 포린폴리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이 나라 물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합니다. 6월 물가상승률은 34%로, 28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죠. 쌀 가격은 6개월 만에 3배가 됐고, 콩과 옥수수 가격은 1년 전의 5배입니다.

전 세계 인플레이션이 둔화한 지금 나이지리아 물가만 거꾸로 가는 이유는 정부 정책에 있습니다. 티누부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과감한 경제개혁 정책을 잇달아 시행합니다. 외환시장을 자유화하고, 50년 넘게 이어져 온 연료 보조금을 폐지했죠. 외국인 투자자나 세계은행·IMF가 환영하는 시장 친화적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기대한 정책 효과(외국인 투자자 귀환)를 기다릴 새 없이, 정책의 충격이 가난한 사람들을 덮쳤습니다. 외환시장 자유화로 통화 가치가 1년 만에 71% 폭락하면서, 밀·비료 같은 수입품 가격이 무섭게 치솟았고요. 보조금 폐지로 휘발유 가격이 1년 동안 223% 폭등하자 현지에서 생산된 야채 가격도 덩달아 급등합니다. 이 나라에 사는 1억 명 넘는 빈곤층엔 재앙입니다.

8월 9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시위대가 ‘굶주림 임금은 안 된다’는 팻말을 들고 행진 중이다.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기엔 턱없이 모자란다는 항의다. AP 뉴시스
8월 9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시위대가 ‘굶주림 임금은 안 된다’는 팻말을 들고 행진 중이다.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기엔 턱없이 모자란다는 항의다. AP 뉴시스
정부는 지난달 최저임금을 월 3만 나이라(2만5000원)에서 7만 나이라(5만9000원)로 올리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쌀 50㎏ 한 가마니 값(9만 나이라)에도 못 미치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은 기억합니다. 지난해 11월 티누부 대통령은 대통령용 항공기와 요트, 국회의원용 SUV에 3800만 달러의 추가 예산을 승인했습니다.

시위는 일단락됐지만, 아직 해결된 문제는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깊은 좌절과 리더십의 붕괴를 확인해 줬을 뿐이죠. 그래서 이번 ‘배고픔의 시위(hunger protest)’는 어쩌면 아직 끝이 아닐지 모릅니다.

우간다·가나에도 퍼진 물결
나이지리아뿐만이 아닙니다. 7월 23일 우간다 젊은이들은 38년 동안 집권한 무세베니 정부의 부패에 항의해 수도 캄팔라를 행진했습니다. 경제 비상 상황인 가나에선 지난달 말 청년층이 계획한 대규모 시위를 고등법원이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케냐 시위가 만들어낸 새로운 물결이 아프리카 다른 나라로 퍼지고 있습니다.

7월 23일 우간다 캄팔라에서 고위층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AP 뉴시스
7월 23일 우간다 캄팔라에서 고위층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AP 뉴시스
나이지리아의 정책 분석가 요아킴 맥에봉은 세마포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청년들이 “남아프리카에서 모로코까지” 좌절을 공유했다고 말합니다. “케냐, 우간다, 나이지리아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르지만 광범위한 동인은 같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엔 15~35세 사이 청년층이 4억명 이상 있습니다. 이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도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제한된 취업기회와 생활비 상승으로 좌절합니다.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부는 ‘기다리라’고 하지만 이미 그런 인내심도, 신뢰도 잃었습니다. 분노한 이들에게 소셜미디어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이제 이들은 좀 더 과감해졌습니다.

나이로비 케냐타대학교의 자비에 이차니 박사는 이런 움직임이 “아프리카 정부에 대한 경종”이라고 말합니다. “정부가 신속하게 움직여 국민의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중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아프리카의 청년 시위가 과거 아랍의 봄이나 최근 방글라데시 시위처럼 정권 교체 혁명으로까진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에 그동안 누려온 권한을 일부 내려놓고 한발짝 양보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효과를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 대륙 아프리카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합니다. By.딥다이브

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 영국 극우세력의 반이민 폭력 시위, 베네수엘라의 대선 불복 시위 등. 요즘 전 세계적으로 눈에 띄는 대규모 시위가 참 많습니다. 각각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중요한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왠지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가 가장 끌리더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지난 6월 케냐에서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은 가운데, 빵에 16%의 세금을 매긴다는 소식에 Z세대가 분노했습니다. 루토 대통령은 증세안을 철회했지만, 이제 시위대는 대통령 사임을 요구합니다.

-케냐 시위의 성과는 다른 아프리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살인적인 물가 급등에 시달리는 나이지리아에서는 8월 1~10일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굶주린 청년들은 정치인의 약속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시위가 우간다, 가나로도 번지면서 아프리카 정부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청년 실업난과 불평등,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라는 공통점이 아프리카 Z세대를 뭉치게 만듭니다. 이 시위가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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