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물 고갈에 ‘바닷속 노다지’ 부각
학자들 “채굴땐 해저 서식지 타격”
결정권 쥔 ISA 새 총장은 반대파
찬성 입장 한국 “규칙 마련 최선”
자원 고갈의 유일한 해법인가, 바다 생태계에 대한 치명적 위협인가. 심해채굴을 둘러싼 찬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그 결정권을 가진 유엔 산하 기구의 새로운 수장이 선출됐다. 심해채굴에 적극적으로 나서 온 한국 입장에선 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
● 바닷속 희귀금속, 육지의 몇 배
깊은 바닷속은 희귀광물의 보고다. 하와이 동남쪽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 바닥에 널려 있는 망간단괴가 그 예다. 감자처럼 생긴 이 광석은 니켈, 망간, 구리, 코발트로 구성된다. 전기차 배터리와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에 쓰이는 중요한 금속자원이다.
추정에 따르면 이 해역엔 약 75억 t의 망간, 3억4000만 t의 니켈, 7800t의 코발트, 2억7500만 t의 구리가 포함돼 있다. 전 세계 육상 매장량과 비교하면 망간은 5배, 니켈 3배, 코발트 9배, 구리는 8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런 노다지가 바다엔 한두 곳이 아니다. 코발트·바나듐·백금이 풍부한 ‘고코발트 망간각’, 구리·아연·금·은이 섞인 ‘해저열수광상’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인류는 1960년대부터 해저자원의 잠재력에 눈뜨고 탐사를 벌여왔다. 하지만 아직 상업적 채굴이 이뤄진 곳은 한 곳도 없다. 심해채굴 산업이 열리느냐는 그 승인 권한을 가진 국제해저기구(ISA)에 달려 있다.
ISA는 상업적 심해채굴을 위한 절차와 규칙을 마련 중이다. 목표는 2025년 7월까지 규칙 정비를 끝내는 것. 이르면 내년부터 바닷속 광물을 캐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168개 ISA 회원국은 심해채굴을 서두르자는 찬성파와 채굴을 금지 또는 유예해야 한다는 반대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여왔다.
2일 열린 ISA 사무총장 선거에서 양측이 세를 겨뤘다. 결과는 반대파가 미는 브라질 여성 해양생태학자 레치시아 카르발류 후보의 승리. 채굴 승인 절차 마련에 앞장서온 마이클 로지 현 사무총장과 달리, 그는 심해 생태계를 위해 상업적 채굴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카르발류 당선자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서 현재로선 마감일까지 이 일(규칙·절차 마련)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 한국은 탐사광구 3곳 확보
심해채굴 찬성파의 대표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ISA에 가장 많은 자금을 제공하고, ISA와 가장 많은 탐사 계약(5건)을 체결한 나라다. 수입에 의존하는 망간, 코발트, 니켈 같은 필수 금속을 심해채굴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도 일찌감치 심해채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0년대부터 인도양과 태평양에 총 3개의 탐사광구를 확보했다. 중국 다음으로 많고, 러시아와 같은 수준이다.
이미 ISA와 탐사계약 2건을 체결한 인도는 올해 초 두 곳을 추가로 신청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ISA 미가입국이지만, 하원 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중국 견제를 위해 심해채굴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금속을 둘러싼 글로벌 자원 전쟁이 바다 밑으로 확대된다.
해저 광물에 관심이 쏠리는 건 육지에서 광물을 얻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고품질 광석 매장지가 빠르게 줄어, 더 깊은 지하나 외딴곳으로 들어가야 해 생산성이 떨어진다. 또 육지 광산 개발은 삼림 파괴와 식수원 오염 때문에 주민 반발에 부닥친다. 급증하는 광물 수요를 채우려면 결국 바다가 답이라는 게 개발론자 주장이다. 로지 현 ISA 사무총장은 CNBC 인터뷰에서 “심해채굴은 육지와 같거나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양의 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 32개국은 채굴 금지·유예 주장
심해채굴에 반대하는 세력은 결집 중이다. 현재까지 심해채굴 금지 또는 유예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국가는 32곳에 달한다. 프랑스, 영국, 독일, 덴마크 같은 유럽 국가뿐 아니라 팔라우, 피지, 사모아 같은 남태평양 섬나라도 동참했다.
심해는 아직 5%도 탐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과학자들은 해저에 수백만 년 묻혀 있던 광석을 꺼내 올리면 해저 생물 서식지가 파괴될 거라고 우려한다. 해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확인하기 전까진 채굴을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엔 심해저 암흑산소 생산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영국·독일 공동연구팀이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에 깔린 망간단괴가 전기분해를 통해 상당량의 산소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심해채굴을 하기 전에 산소 생산이 일어나는 지역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저 동식물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면, 심해채굴 허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무총장 교체에 새로운 과학적 발견까지. 분위기가 불리하게 돌아가지만, 한국은 심해채굴 규칙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환경 보호와 계약자 권리를 균형적으로 반영한 합리적인 개발 규칙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논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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