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조6975억 원.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전국 시도교육청이 운영하는 기금들에 쌓여 있는 돈의 규모입니다. 교육청의 재정 수입이 매년 불규칙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만든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을 비롯한 기금이 모두 54개. 이들 기금에서 집행하지 않고 쌓여 있는 적립금이 2020년 2조8948억 원에서 지난해 18조 원을 훌쩍 넘긴 것입니다. 교육비특별회계로 예산을 편성하는 전국 교육청은 여윳돈이 있으면 기금으로 적립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습니다. 전국 17개 교육청이 일종의 ‘쌈짓돈’으로 20조 원 가까이를 챙겨 놓은 셈입니다.
이런 반면에 최근 정부의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올 6월 기준 중앙정부 채무가 1145조9000억 원. 올 상반기(1∼6월)에도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가 103조4000억 원의 적자를 보이면서 정부의 빚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세수 펑크’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예산 당국은 매년 지출 구조조정이 지상 과제입니다.
여유로운 교육청과 가난한 정부. 이들의 상반된 처지는 교육청들이 재원을 배정받는 방식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법에 따라 정부는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등 전체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를 지방교육교부금으로 교육청에 나눠줘야 합니다. 초중등 교육에 실제로 필요한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와는 무관하게 배정하는 예산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음에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늘어나는 내국세 때문에 교육청이 받아 가는 교부금은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지난해 정부의 세수가 예상보다 50조 원 이상 줄어들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당초 예상보다 10조 원 작아졌음에도 교육청들의 재정 운용이 “어렵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지난해 99조6000억 원 규모의 예산 중에서 8조6000억 원가량의 예산을 쓰지 못하고 남겨서 올해로 넘겼다는 지적입니다. 시도교육청이 쌓아둔 기금과 별개로 집계된 ‘이·불용액’입니다.
이번 분석에서는 지난해 교육청들이 학교시설여건개선 예산을 늘렸다가 대거 불용 처리했다는 비판도 특히 눈에 띕니다. 15조6000억 원 규모의 학교시설여건개선 예산을 편성해 놓고 30%가 넘는 5조 원가량을 집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수요와 무관한 예산’을 배정하는 교부금 제도를 그대로 두면, 빚 늘리는 정부 뒤에서 이처럼 돈 쓰는 일이 고민인 교육청의 모습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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