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철강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호주 정부는 세수 감소 경고등을 켰습니다. 미국과 EU부터 중남미와 동남아시아까지. 전 세계 철강업계와 광산업계를 동시에 뒤흔드는 이슈. 바로 중국 철강 과잉생산 때문입니다.
중국산 철강이 남아도는 거야 주기적으로 있는 일인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요. 그런데 이전 위기(2008년, 2015년)와 달라진 게 있습니다. 이 불을 꺼야 할 소방서(=중국 경기)에 가장 큰불이 났단 점이죠. 이 혼란이 생각보다 오래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인데요. 전 세계 덮친 중국의 철강 과잉 공급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철강의 ‘혹독한 겨울’은 우리 예상보다 더 길고, 더 추우며,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중국 바오우그룹 후왕밍 회장이 최근 반기 업무회의에서 한 이 말. 전 세계 철강업계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바오우그룹은 전 세계 철강의 약 7%를 생산하는 압도적 1위 기업이기 때문이죠.
중국은 전 세계 철강 공급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죠. 이런 중국 철강업계에 ‘추위’와 ‘겨울’ 같은 단어가 다시 등장한 건 2022년부터. 팬데믹 직후의 반짝 호황이 지나고, 2021년 말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의 디폴트 선언과 함께 중국 부동산 경기가 확 고꾸라진 시점입니다.
중국 내 철강제품 가격은 뚝뚝 떨어지고, 철강회사 이익은 급락 중입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철강기업 중 40%가량(2314개)은 적자에 빠졌습니다. 급기야 지난달 말 건설용 철근 가격은 여러 지역에서 2017년 이후 처음으로 t당 3000위안을 밑돌아, 업계를 놀라게 했죠(‘아이고, 내 생애 다시 2자를 보게 될 줄이야!’라는 분위기). 7월 말엔 중국 건설용 철강 1위 업체 동링그룹이 부도를 맞아 긴장을 고조시켰고요. 이번 달 중국 시장조사업체 마이스틸 설문조사에서 ‘수익성이 있다’고 보고한 중국 철강업체는 5%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3년 연속 혹한이 지속되면 이제 줄줄이 나가떨어질 법도 한데. 철강생산량은 생각보다 그리 팍팍 줄지 않습니다. 상반기 생산량은 5억3000만t. 전년보다 고작 1.1% 줄어드는 데 그쳤죠. 다들 여전히 너무 열심히 공장을 돌립니다.
이유가 뭘까요. 업계에선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합니다. 업계 전체를 보면 다 같이 생산량을 줄이는 게 최선이겠죠. 하지만 각 기업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다른 회사가 죽고 자기만 살아남아서 호황기에 승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현금이 남아 있는 한, 계속 고로를 가동하려고 하죠. 학습효과도 있습니다. 2015년 철강 가격이 t당 1800위안 아래로 떨어졌던 그 암흑기를 버텨낸 기업들은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으니까요.
중국산 관세에도 못 버틴 칠레 제철소
정작 비상이 걸린 건 다른 나라의 철강기업입니다. 중국 안에서 팔리지 않고 남는 철강 제품이 바다 건너로 밀려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발 저가 철강의 공습입니다. 올해 중국의 철강 수출은 2016년 이후 오랜만에 1억t을 돌파할 전망입니다.
세계 2위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은 지난 1일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며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공격적인 수출”을 원인으로 지적했죠. “유럽과 미국의 강철 가격이 모두 한계비용보다 낮아졌다”면서 “현재 시장상황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겁니다.
독일 철강기업 잘츠기터는 이달 초 발표한 상반기 실적에서 적자로 전환해, 애널리스트들을 놀라게 했는데요. 역시 같은 이야기-과잉 생산능력과 중국의 수출-를 내놨습니다. 독일철강협회의 마틴 토이링거 회장은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의) 과잉생산능력이 산업의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중국산 철강의 쓰나미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U와 미국처럼 중국산 철강에 관세 장벽을 쌓으면 피할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칠레의 철강회사 CAP는 1950년 설립된 칠레 최대 규모의 우아치파토 제철소를 폐쇄한다고 이달 초 발표했습니다. 칠레 당국이 지난 4월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33%로 높였지만, 그걸로도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의 가격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이 회사의 2500명 근로자를 포함한 2만명 넘는 지역민이 일자리를 잃을 판입니다. 중국산 철강의 밀어내기 공세가 지구 반대편의 유서 깊은 경쟁사를 녹다운시킨 겁니다.
철광석 가격 붕괴의 시작일까
울고 싶은 건 철강기업만이 아닙니다. 이제 광산회사까지 울상입니다. 철의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급락하기 때문이죠. 15일 철광석 선물 가격은 93.37달러(싱가포르거래소 기준). 올해 초의 고점(130달러)보다 28%나 빠졌습니다.
중국에 철광석을 주로 수출하는 건 호주(리오틴토, BHP, 포테스큐)와 브라질(발레)의 대형 광산기업이죠. 이 4대 기업은 중국 철강시장이 암흑에 뒤덮였던 상반기에도 상황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일단 중국 고객사가 고로 가동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으로의 철광석 수출이 줄긴커녕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었고요. 무엇보다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 시장의 악재를 떨쳐내 줄 강력한 한방을 조만간 내놓을 거란 기대였습니다. 바로 부동산 부양책이죠.
그래서 7월 초만 해도 철광석 가격이 하반기엔 반등할 거란 전망이 파다했습니다. 실제 당시 좀 오르기도 했고요. 하지만 7월 15~18일 중국공산당의 ‘3중 전회’가 별 소득 없이 끝나버렸죠. 부동산 부양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철광석 가격이 t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집니다. 한때는 연말 120달러 전망도 있었는데(모건스탠리) 이제 다들 전망치를 낮춰잡기 바쁩니다. 호주 웨스트팩의 상품전략책임자인 로버트 레니는 현지 언론에 이렇게 말합니다. “철광석 가격이 왜 여전히 100달러 수준을 유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철강 시장의 엄청난 혼란을 감안할 때 철광석 가격은 80달러 중후반에나 있게 될 겁니다.”
물론 철광석 가격이 80달러보다 낮게 떨어진다고 해서, 대형 광산기업들까지 망하거나 적자 수렁에 빠지는 건 전혀 아닙니다. 메이저 기업의 철광석 손익분기점은 t당 40~60달러 수준으로 매우 낮으니까요. 다만 쏠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철광석이 힘을 못 쓰면 실적에 타격이 상당하겠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런 우려 때문에 4대 광산기업 시가총액에선 올해 들어 1000억 달러가 사라졌습니다. 사실 정말 생존의 위기에 놓이는 건 대형 광산기업보다는 철광석 생산비용이 높은 중소형 광산업체-중국·말레이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규모 기업-일 겁니다.
어찌 됐든 철광석 가격의 심상찮은 하락세는 광산업계를 긴장케 합니다. 2015년 철강시장 붕괴로 철광석 가격이 2년 만에 3분의 1토막(최저 37달러) 났던 악몽이 되살아나기 때문이죠. 이에 호주 정부는 18일 상당히 비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철광석 가격이 더 떨어져서 t당 60달러가 되고, 이로 인해 4년 동안 30억 호주달러(2조7000억원)의 연방 세수입이 사라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전망치를 발표한 겁니다. t당 60달러라니?! 아무리 보수적인 추정치라고는 하지만 너무 낮긴 한데요. 그만큼 호주 경제에 철광석 가격이 중요하단 뜻이겠죠. 최근의 호주달러 가치 하락도 철광석 가격 급락 탓이라는군요.
너무 큰 중국 부동산의 빈자리
중국 철강시장은 이미 두차례의 심각한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15년 중국 증시 버블 붕괴 때인데요. 두 번 모두 해법은 같았습니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부양책이었죠.
특히 2015년 위기 직후 중국 정부가 집중해서 효과를 본 건 부동산 시장이었습니다. 금리를 내리고 돈과 규제를 왕창 풀어서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데 집중했죠. 1~2선 대도시뿐 아니라 3~4선 도시까지 부동산 투기 붐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를 낳았는데요. 그래서 현재는? 다들 아시는 지금의 상황입니다. 커질 대로 커진 부동산 버블이 결국 터지고, 전국에 짓다 만 아파트가 넘쳐나죠.
자, 그래서 의문입니다. 또다시 닥친 이 철강 위기는 무슨 수로 돌파할 수 있을까요. 일단 부동산 시장엔 기대기 어렵습니다. 부동산 산업의 철강소비량은 건설 중인 바닥 면적이 비례하기 마련인데요. 이제 중국에선 새 건물이 올라가는 걸 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신규 건설 착공은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보다 24%나 줄었습니다. 미분양 물량이 넘치는 상황에서 자금을 조달할 길 없는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무슨 수로 새 아파트를 지어 올리겠어요. 대신 막대한 재고를 정리하기 바쁘죠. 아마도 이거 정리하는 데만 몇 년 걸릴 겁니다.
중국은 전 세계 철강을 50% 이상 쓰는, 가장 큰 소비국이고요. 그중 31%가 부동산에 들어갑니다(지난해 기준). 하지만 이제 20년 동안 이어진 중국 건설 붐은 끝났고, 건설 착공 면적과 철강수요는 빠르게 줄어갑니다. 과연 이 넓은 빈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중국보다 더 빨리 경제가 성장하는 다른 나라… 아마도 인도?
하지만 브라질 투자은행 방코마스터의 파울로 갈라 이코노미스트는 인도를 포함해 어떤 국가도 이 빈자리를 메울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건 연간 4조 달러 규모의 중국 제조업과 연간 4000억 달러의 산업생산(인도)을 비교해 얘기하는 겁니다.”
게다가 인도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다고요.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철강 생산능력을 3억t으로 확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는데요(지난해 1억4000만t). 인도 최대 철강회사 타타스틸이 이미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최근 2조8000억원 투자 계획 발표). 지금 상황에선 인도가 철강시장의 공급 과잉을 더 부추기지나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흔히 ‘철강업은 사이클’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중국 언론에서는 “철강업계가 L자형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이어집니다. 도대체 언제나 바닥을 칠지 알 수 없다는 뜻인데요. 끝이 보이지 않는 중국발 철강위기. 당분간 세계 경제엔 큰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
중국 철강의 덤핑 공세,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에 대한 이야기, 지난해부터 꾸준히 나왔는데요. ‘너무 싸다’고 걱정했던 중국산 철강 가격이 최근 들어 더 빠르게 떨어지는 데다, 원재료 철광석 가격까지 급락하면서 갈수록 태산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세계 최대 철강기업 바오우그룹 회장이 “혹독한 겨울이 더 길고 추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중국의 경기침체로 공급과잉에 빠진 중국 철강 업계는 수익성 악화에 시달립니다. 중국산 철강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저가 중국 철강의 공습을 막기 위해 관세 장벽을 높이는 나라가 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칠레의 최대 규모 제철소는 33%의 관세 부과에도 무기한 운영 정지를 결정했습니다.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도 올해 들어 30% 가까이 급락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현재 t당 90달러대인 철광석 가격이 6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는데요. 설마 2015년 같은 붕괴 상황이 오는 걸까요. 중국 부동산 시장을 단기간에 되살릴 방법이 마땅찮다 보니, 해법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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