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첨단 산업을 주로 뒷받침하던 에너지 분야에선 최근 큰 혁신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청정에너지 연간 투자 규모가 4조5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도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매년 27%씩 급성장해 전 세계 ESS 설치 규모가 2023년 65GW(기가와트)에서 2030년 650GW까지 10배가량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분야 유니콘 기업은 100개 이상 배출됐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하나도 없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2년도 과학기술 수준 평가 결과를 보면 주요국 대비 3년의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에너지 신산업 시장이 온전히 조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모지에 가까운 환경에서 초기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가 동반되기 때문에 민간의 시장 참여자 입장에서는 미래의 불확실한 수익을 기대하며 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분산 에너지, 신산업 분야 핵심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확충하면서 초기 시장을 만들어 나갈 마중물이 절실한데, 그 역할은 당분간 정부를 비롯한 공공 영역에서 수행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에는 공공 부문이 마중물 역할을 하기에는 많은 제약과 장애 요인들이 존재한다. 특히 기관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화된 관리·감독 체계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과 화석연료 시대 관점의 에너지 관련 법령 등 각종 규제에 손발이 꽁꽁 묶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규제 개혁을 통해 공공 부문에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한 주요국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탈리아의 에넬과 프랑스 엔지는 이사회 중심의 자율·책임경영을 보장받아 인수합병(M&A) 등 글로벌 영토 확장을 추진해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성공 스토리를 부러워하지만 말고 정부 규제를 혁신해 공공 부문의 자율·책임경영 체제 정착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공운법상 지나치게 포괄적인 정부의 공공기관 감독 범위를 경중을 가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고성과자에 대한 보상 확대 및 사업 범위 확장을 통해 공공 부문이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단계적으로 적정 범위 내에서 조직, 인사, 예산 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일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공공 부문은 초기 시장 조성을 주도하고 혁신기업을 육성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시장이 성숙되면 공기업과 민간의 역량을 총결집해 글로벌 시장 동반 진출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해 온 반도체, 철강산업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 빅뱅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공 부문에 대한 규제 혁신과 자율·책임경영 체제의 확립이라는 국가 차원의 대승적 결단을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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