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NOW]
팬데믹 거치면서 더 중요해진 집밥… 고물가와 불황에 집밥 수요 늘어
집밥 역할 하고 있는 배달음식… 업계는 집밥 트렌드 읽고 반영해야
“이제 가정집에서 부엌이 사라질 겁니다.”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 세계 최대 모바일 배달 서비스 업체인 딜리버리히어로의 대표가 한 말이다.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지금, 과연 우리의 집에서 부엌은 사라졌을까?
정답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집밥 시장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집밥 시장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집밥과 배달음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고물가’와 ‘경제 불황’이 다시 집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롯데마트와 이마트의 매출 상위 1, 2위는 모두 돈육, 한우 같은 식품류가 차지했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 시장도 2018년 345억 원에서 2023년 3800억 원으로 성장했다. 반찬가게 매출도 늘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반찬가게 이용 건수는 2019년 대비 33%나 증가했다.
그렇다면 최근에 사람들은 집밥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첫째, 집 안에서 간편하게 요리해 먹는다. 예전처럼 완벽한 밥상을 차리기보다는, 반찬 없이 한 그릇으로 간편하게 즐기는 요리가 인기다. 꼭 한식이 아니더라도 한 끼 식사로 손색없는 샐러드, 샌드위치, 포케류도 인기 있는 집밥 메뉴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메뉴는 볶거나 조리는 등 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어 준비 과정이 간편하다. 간단한 요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일상식을 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콘텐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간단한 재료를 활용해 레스토랑 버금가는 메뉴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각종 요리 프로그램과 레시피가 사랑받고 있다.
둘째, 배달음식이 집밥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배달음식을 시켜 한 번에 다 먹기보다는 나중에 두세 번 더 먹을 수 있도록 소분해 냉동실에 얼린다. 반찬은 다른 식사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용기에 따로 담아 보관하기도 한다. 냉동실에 보관했던 음식은 다른 재료와 양념을 더해 새로운 요리처럼 활용한다. 가령, 볶음밥을 주문해 첫날은 불닭 소스를 곁들여 먹고, 다음 날은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를 더해 지겨움을 없앤다. 덕분에 각종 소스 시장도 덩달아 성장하고 있다.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같은 기본 소스는 물론이고 중화요리, 카레, 불닭, 마라 소스까지 다양한 소스가 출시되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소스류 출하액은 2019년 3조507억 원에서 2022년 4조113억 원으로 약 31.5% 증가했다.
셋째, 외식도 집밥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집에서 조리해 먹으면 ‘내식’, 식당이나 레스토랑 등을 방문해 식사하면 ‘외식’이라는 일반적인 기준과 달리, 요즘 소비자들은 집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먹으면 ‘집밥’이라고 생각한다. 공들여 예약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꽤 멀리 이동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식당, 한마디로 평상복을 입고 슬리퍼를 끌고 방문할 수 있는 동네 식당은 ‘집밥과 다름없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온 후에 다음 끼니도 해결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기업은 이런 시장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아파트 브랜드에서는 새로운 평면구조를 제안할 때 집밥 트렌드에 맞춰 주방 모양과 크기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생활가전업계는 소비자가 원하는 주방가전의 스펙을 정할 때 이런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해야 한다. 가령 반조리 음식을 입맛에 맞게 조리해 먹는 사람들이 증가하면 냉장고 내에 ‘소스류’를 보관하는 공간이 더 커져야 할 것이다. 집밥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가정간편식(HMR) 업계는 물론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유통업계에서는 맛과 같은 근원적 속성에서부터 포장과 같은 부가 속성에 이르기까지 두루 경쟁력을 갖추고자 노력해야 한다. ‘맛있는 한 끼’를 넘어 맛과 편리성을 함께 담아 소비자를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한 끼’를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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