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에 대한 ‘오락가락’ 돌출 발언으로 대출시장의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 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이 10일 “불편과 어려움을 드려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원장은 앞서 금리 인상이나 은행들의 대출 규제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던 것과 달리 이날은 6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강조했던 ‘은행 자율 관리’에 힘을 실으며 자세를 낮췄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해서 조금 더 세밀하게 입장을 내지 못한 부분, 그로 인해 국민들과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분들께 여러 가지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 원장이 도의적 책임이 아닌 스스로 일으킨 혼란에 대해 사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이 원장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 금리를 높인 은행들을 비판하더니, 은행들이 다양한 대출 규제 조치를 내놓자 이번에는 실수요자의 피해를 지적하면서 일선 은행 창구에서는 혼란이 일었다.
이 원장은 가계부채 관리 방향성에 대해 정부 부처 내 이견은 없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은행권의 자율적인 여신 심사 등을 통해 각자의 영업 계획이나 포트폴리오 관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금융위 등 정부 부처 내 이견은 없다”고 말했다. 또 “국토교통부에서 정책성 대출 금리를 일부 조정함으로써 정책 자금으로 인한 가계대출 증가세가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이 공식 사과와 함께 부처 간 공조를 강조했지만 시장은 아직도 불안한 모습이다. 그간 현안에 거침없이 의견 표명을 해왔던 이 원장이 당장은 말을 아끼더라도 언제든 돌출 발언으로 대출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의견이다.
‘냉온탕 대출정책’ 두번 고개숙인 이복현… 금융권 “여전히 불안”
가계대출 억제 압박에 규제 내놓자 “실수요자 보호” 강조, 은행들 혼란 李 “조금 더 세밀하지 못해 송구” 은행권, 실수요자 대출 재개 나서
“국민, 금융소비자, 은행에서 대출 업무 담당하시는 분들이 불편하셨다면 다시 한번 송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0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은행장과의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그간 자신이 내왔던 들쭉날쭉한 메시지에 대해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을 통해 두 차례나 고개를 숙였다.
이 원장은 최근까지 대출 정책과 관련해 오락가락한 발언을 해 시장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7월 초 금감원의 가계부채 관리 주문에 은행권은 7∼8월 20차례 넘게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해왔다. 이를 지켜보던 이 원장은 ‘고금리로 은행들만 덕 본다’는 비판이 높아지자 뒤늦게 8월 25일 “(은행권의)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에 은행들이 금리 인상을 멈춘 뒤 대출 한도를 줄이고 유주택자 대출을 제한하는 자체 규제를 내놓자 이번에는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될 것”이라며 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했다. 온탕, 냉탕을 오가는 이 원장의 발언에 은행들은 ‘대출을 조이라는 것인지, 풀라는 것인지’ 혼란에 빠졌다.
자신의 발언이 혼선을 빚자 사과에 나선 이 원장은 이날은 ‘개입’ 대신 ‘은행권 자율 심사’를 강조했다. 6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은행권의 자율적인 대출 관리’를 강조한 것에 맞춰 ‘원 보이스’를 낸 것이다.
정책 모기지(대출)와 관련해 금융 당국과 국토교통부 간 정책 조율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견은 없다’고 강조했다. 은행권 주담대의 70% 상당을 차지하는 정책 대출은 가계부채 증폭의 주범으로 꼽힌다. 전날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정책 대출을 줄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 원장은 “국토부에서도 금리를 일부 조정했다”라면서 “정책자금으로 인한 가계대출 증가 부분들이 줄어들고 있는 만큼 국토부 장관이 말씀하신 것과 제가 말씀드리는 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10일 이 원장이 자세를 한껏 낮췄지만 이 원장의 거침없는 발언 스타일을 감안할 때 과연 이날과 같이 계속 ‘원 보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원장은 언제나 현안에 의견을 숨기지 않았다”라며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 이 원장이 또 의견을 내놓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한편 은행권은 기존에 내놨던 대출 정책들을 수정하고 나섰다. 모호했던 실수요자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해 혼란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이날 1주택자에 대한 처분조건부 주담대를 허용하기로 했다. 주담대 실행일 당일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으로 구매 주택 매수 계약을 체결한 차주에 한해서다. 생활 안정 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 1억 원 규제도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이면 1억 원을 초과할 수 있도록 했다.
KB국민은행도 이날 기존 집을 처분하고 새집을 사는 경우나 대출 실행일 기준 6개월 이내 결혼 예정자가 주택을 사는 경우 등은 대출을 내주기로 했다. 앞서 우리은행은 결혼, 직장·학교 수도권 이전 등 가계대출 취급 제한 예외 조건을 제시했다.
신한·KB국민·우리은행은 실수요자 심사 전담반을 꾸려 대출 가능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회색지대’에 있는 금융소비자들의 대출 여건을 살필 예정이다. 또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실수요 구분 관련 심사사례를 발굴, 공유해 보완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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