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문’… 75년만에 깨져버린 고려아연 공동경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MBK, 고려아연 최대주주로
장병희-최기호 영풍그룹 창업뒤… 3세 경영 넘어오면서 관계 ‘삐걱’
장씨 일가, 사모펀드 MBK 손빌려… 최씨 일가와의 파트너십 끝낸 듯

75년간 이어져 온 장씨, 최씨 두 가문의 고려아연 공동경영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 국내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에 오르면서다. MBK파트너스가 장씨 일가와 경영권 분쟁을 펼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몰아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12일 MBK 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 및 특수관계인(장씨 일가)과의 주주 간 계약을 통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돼 MBK파트너스 주도로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영풍 및 특수관계인 소유 지분 일부에 대한 콜옵션을 부여받기로 했으며, 최종적으로는 MBK파트너스가 최대주주그룹 내에서 고려아연 지분을 영풍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보다 1주 더 갖게 된다.

이로써 MBK 파트너스는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투자업계에서는 장씨 일가가 MBK파트너스의 손을 빌려 최씨 일가와의 파트너십을 끝낸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의 단일 최대주주가 영풍인 상태에서, 최 회장이 2022년부터 지분 교환 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나서자 장씨 일가에서 반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고(故) 장병희 명예회장과 최기호 명예회장이 1949년 영풍그룹을 창업한 뒤 75년 동안 양가의 파트너십은 이어져 왔다. 장씨 일가는 영풍을 비롯한 전자계열을, 최씨 일가는 고려아연을 포함한 비전자계열을 담당하면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 온 것이다.

하지만 3세 경영으로 넘어오면서 양가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 회장 부임 이후인 2022년부터 고려아연이 한화그룹 등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지분 교환에 나서면서 두 집안의 지분 경쟁에 막이 올랐다. 상대적으로 지분이 낮았던 최 회장은 현대차, LG화학 등과 지분을 교환하면서 우호 세력을 만들었고, 그에 영풍 측에서도 계열사 등을 통해 지분 매집에 나섰다. 4일 기준 장씨 일가의 우호 지분은 33.14%, 최씨 일가의 우호지분은 15.64%다. 다만 현대차나 한화 등 고려아연과 지분 교환에 나선 기업들이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줄 경우 장씨 일가 지분을 넘게 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때 20% 안팎까지 벌어졌던 지분 격차가 줄어들자 장씨 일가 측에서 결국 MBK파트너스에 손을 내민 것으로 분석된다. 영풍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떨어진 것도 MBK파트너스 참전 배경이 됐다. 앞선 3월 영풍은 고려아연의 지분 교환 등을 저지하고자 현금 배당 상향 등을 요구했으나, 국민연금 등에 막히면서 체면을 구겼다. 서린상사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패배했다.

MBK파트너스는 전문 경영인을 내세워 고려아연 경영권 장악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이 장악한 고려아연 이사회 구성을 변경하고, 최종적으로 최 회장도 축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형진 영풍 고문은 “두 가문의 공동 경영이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글로벌 위상을 높이기 위해 경영 및 투자 전문가에게 지위를 넘기는 것이 책임 있는 대주주의 역할”이라고 했다.

#MBK#고려아연#공동경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