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경기침체 대응’으로
각국 통화정책 무게추 빠르게 전환
한은, 물가-환율 안정세 ‘여건’ 갖춰
부동산-가계부채 증가세 걸림돌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통화정책 방향을 전환하며 2년 넘게 이어온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미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단행한 영국,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주요 중앙은행들의 추가 금리 인하도 예고되는 등 글로벌 통화정책 운용 무게추가 ‘물가 안정’에서 ‘경기침체 대응’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다. 반면 한국은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 문제에 발목을 잡혀 10월 금리 인하도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각국 ‘물가와의 전쟁’ 막 내렸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4년 6개월 만에 ‘긴축’에서 ‘완화’로 돌아선 것은 인플레이션이 한풀 꺾이면서 통화정책 운용의 초점이 경기침체 대응으로 전환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2.5% 올라 3년 6개월 만에 가장 작은 상승 폭을 보였다. 물가상승률이 2%를 향해 꾸준히 내려가고 있는 대신 경기둔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노동시장 주요 지표인 비농업 부문 일자리 수는 8월 예상치(16만 건 증가)를 밑돈 14만2000건 증가에 그쳤다.
이미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연달아 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10대 선진국 중앙은행 중 6곳이 통화정책 완화를 시작했다. 12일(현지 시간) ECB는 예금 금리를 연 3.75%에서 3.50%로 0.25%포인트 내렸다. 캐나다도 4일 3회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다음 달 0.25%포인트 추가 인하가 예상된다. 캐나다에서도 8월 실업률이 6.6%로 집계되며 고용이 예상보다 가파르게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캐나다 중앙은행이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통화정책 완화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8월 처음 금리를 내린 영국은 11월 0.25%포인트 더 내릴 것으로 점쳐진다.
연준까지 피벗에 동참하면서 한동안 자본시장의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노무라증권은 금리 인하와 관련해 “투자자들에게 향후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해 더 걱정해야 한다는 신호가 될 수 있어 시장을 오히려 하락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 한은의 선택에도 시선 쏠려
글로벌 금융시장에 ‘금리 인하의 시간’이 도래한 가운데 다음 달 11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 깊어지게 됐다. 국내 물가와 원-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된 상황이지만 최근 불붙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걸림돌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2일 “현재 금융통화위원들은 한은이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지 않겠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10월 금리 인하도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내수 침체를 고려해 더는 금리 인하를 미뤄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한은이 10월에도 금리 인하에 조심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내수지표가 둔화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춰 내수 침체를 유발하는 불필요한 비용을 치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한미 금리 차가 좁혀지면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 경쟁력이 저하될 위험도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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