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후 첫 개장일인 19일 SK하이닉스 주가가 6.14% 곤두박질쳤다. 삼성전자 주가도 2.02% 하락했다. 글로벌 증시를 덮은 ‘R(경기 침체)의 공포’에 더해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반도체 경기 비관론으로 ‘반도체 겨울’이 다시 찾아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부 메모리 업황 지표도 위기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 업황 회복과 함께 약 1년간 오르던 D램 가격 지표가 상승세를 멈추고 소폭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날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의 8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2.38% 내린 2.05달러로 집계됐다.
여기에 투자 업계의 연이은 ‘고점론’이 위기론에 불을 지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고점에 대비(Preparing for a Peak)’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 매출 증가율이 올 3분기(7∼9월) 고점을 기록하고, 4분기(10∼12월)부터는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서 이달 15일에는 ‘겨울이 닥친다(Winter looms)’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각각 27%, 54% 대폭 하향 조정했다. SK하이닉스는 투자의견도 ‘비율 축소’로 바꿨다.
최근 잇따르는 테크 기업들의 주가 조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2분기(5∼7월) 실적 발표에서 3분기(8∼10월) 성장세 둔화와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블랙웰’ 생산 차질을 공식화해 주가가 급락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위기에 부딪힌 인텔도 올 들어 주가가 60%까지 폭락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2022년 말∼지난해 반도체 업계를 강타한 반도체 혹한기가 다시 찾아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지난해 혹한기 초입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AI 수요와 관련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주문을 미리 받아 생산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은 이미 내년 생산 예정인 물량까지 판매가 끝난 상태다.
투자업계가 글로벌 빅테크들의 서버 투자 확대 움직임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글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2분기(4∼6월) 실적 발표와 함께 내년에도 자본지출(CAPEX) 규모를 늘리며 AI 서버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달 보고서에서 “AI 수요가 약하면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HBM 인증에 적극적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여러 종류의) 하드웨어에 AI가 도입되는 원년인 2025년 AI 칩 탑재량 증가에도 주목한다”고 밝혔다.
범용 D램 부진 전망의 원인으로 꼽힌 PC·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제품 수요의 경우 속도는 더디지만 회복 신호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하며 3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도체 혹한기가 오려면 수요 둔화와 맞물려 공급 과잉이 있어야 하는데, 주요 기업들의 투자 조절이 지속되는 만큼 2020∼2021년과 같은 과잉 공급 우려도 낮다는 평가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범용 D램도 필수 투자만 진행되고 있다. 재고 보유 상황에 따라 일시적 부침은 있을 수 있지만 지난해처럼 공급 과잉에 따른 반도체 혹한기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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