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핵심기술인력 기자회견
“현장 아는 기술자 최윤범 회장과 함께할 것”
“MBK가 고려아연 장악하면 국가 경쟁력 저하” 우려
“MBK는 고려아연 경영 못해”… 핵심기술직 사퇴 불사
“영풍과 갈등 요인은 장형진 고문 부당한 요구 때문”
최윤범 회장, 영풍 폐기물 고려아연에 떠넘기는 시도 막아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고려아연의 분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보다 못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현업 기술자들이 직접 나섰다. 고려아연 제련업 역사의 산 증인으로 알려진 이제중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 부회장이 직접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영풍·MBK 연합의 공세를 지적하면서 사모펀드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장악할 경우 핵심기술인력을 중심으로 사직까지 불사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제중 고려아연 CTO 부회장은 24일 온산제련소 및 본사 핵심기술자들과 함께 서울시 종로구 소재 그랑서울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제중 부회장을 비롯해 김승현 기술연구소장, 설재욱, 원종관, 권기성 생산1·2·3본부장 등 고려아연 핵심기술부서 임직원 18명이 고려아연 공식 워크웨어(작업복)를 입고 회견장 무대에 올랐다. 기자회견 입장문 발표 이후에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하자’와 ‘지켜내자’를 강조한 구호를 외치면서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이제중 부회장이 직접 주도했다. 그동안 사태 추이를 지켜보던 이 부회장은 국민과 언론에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하소연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고 한다. 시급한 사안인 만큼 기자회견 준비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주 금요일(20일) 시간과 장소를 확정하고 월요일(23일) 하루 준비시간을 거쳐 이날 열린 것이다. 이제중 부회장과 핵심기술부서 임직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임직원들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현 경영진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출했다. 이제중 부회장은 “저를 비롯한 핵심기술인력들, 고려아연의 모든 임직원들은 현 경영진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공세에 대해서는 “투기세력이 고려아연을 차지한다면 핵심기술이 순식간에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고 고려아연은 물론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은 장형진 ㈜영풍 고문에 있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사모펀드와 힘을 합쳐 고려아연을 공격하는 장형진 영풍 고문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이 큰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투기적 성격의 사모펀드와 부실 제련소 경영자들이 회사를 장악하면 이들에 의해 지난 50년간 세계 최고 비철금속 제련기업으로 성장시킨 고려아연 임직원들의 노고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이러한 사실과 심각한 우려를 모두에게 정확하게 알리고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고려아연을 지키기 위해 국민 여러분께 MBK파트너스가 강행하는 적대적 M&A(인수·합병)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MBK파트너스 투기자본이 중국자본을 등에 업고 고려아연을 집어삼키려는 약탈적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고려아연은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기술과 열정으로 세계 최고 비철급속 기업으로 거듭났고 현재 비철금속은 자동차부터 반도체와 철강 등 국내 주요 산업에 핵심원자재를 공급하는 기간산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장형진 영풍 고문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장형진 영풍 고문 측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대립하게 된 이유도 공개했다. 낙동강 상류에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가 지난 4~5년 전 환경 이슈에 휘말렸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영풍은 카드뮴 처리를 비롯해 석포제련소의 폐기물 보관소에 있는 유해 폐기물을 떠넘기고 고려아연과 온산제련소를 영풍과 석포제련소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만들려고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막아낸 사람이 최윤범 회장이고 이때부터 장형진 고문과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내용은 경영자 관점이 아니라 40년 동안 고려아연 현장에서 근무한 현업 기술자 입장에서 확인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영풍과 고려아연 갈등의 모든 책임은 실질적으로 영풍을 경영한 장형진 고문에게 있다”며 “석포제련소 경영 실패로 심각한 환경오염과 중대재해를 일으켜온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기업사냥꾼인 투기자분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영풍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대표이사 2명이 모두 구속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인원감축까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영풍 석포제련소 직원들도 모두 우리 동료이고 가족이다. 특히 영풍 대표이사 박영민 부사장은 친구이면서 동기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장 고문은 영풍 석포제련소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에는 관심이 없고 매년 고려아연으로부터 막대한 배당금을 받아 고려아연 주식 매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독보적인 기술을 앞세워 세계 1위 기업으로 거듭났고 ‘트로이카드라이브’라는 비전을 통해 미래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온산제련소 사원부터 소장,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현재 부회장직을 유지하면서 이 기간 영풍과 고려아연의 관계를 옆에서 다 지켜봤다”고 말했다. 최윤범 회장에 대해서는 일반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고려아연에서 최고 수준 기술자라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은 “최 회장이 미국에서는 변호사였지만 고려아연에 합류하고 온산제련소에서 1년 동안 저와 함께 현장실습을 하면서 웬만한 온산제련소 기술을 모두 마스터했다”며 “기술과 전문경영 능력을 모두 갖춘 인물로 최윤범 회장 때문에 영풍과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은 장 고문과 사모펀드의 생각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M&A가 성공하면 고려아연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배터리소재사업과 자원순환사업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자원순환사업 일환으로 추진한 미국 이그니오홀딩스 인수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이 직접 인수에 깊게 관여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시장을 거점으로 폐자재를 자원화하는 사업으로 좋은 성과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원아시아펀드의 경우 재무적 투자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당시 고려아연이 보유한 현금이 2조5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많은 상태였고 다양한 투자처 중 일부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은 “분쟁을 지켜보다가 정확한 내용을 알릴 방법이 없어 갑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호소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며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을 이끌면서 안전 인센티브 도입과 관심에서 시작되는 안전문화가 실제로 온산제련소에 정착되면서 3년 반 동안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사망사고도 있었지만 현재 온산제련소 안전문화는 고용노동부 모범사례로도 꼽힌다. 공장 직원들 식사까지 챙기는 현장을 아는 경영인으로 현업 기술직 임직원들은 현 경영진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MBK는 고려아연을 경영할 수 없다”며 “MBK가 고려아연을 장악한다면 우리도 핵심기술자인력들도 그만두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제중 고려아연 CTO 부회장은 지난 1985년 고려아연에 입사해 40년간 고려아연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온산제련소 사원으로 시작해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대한민국 100대 기술인으로 선정된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과 함께 고려아연 기술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아연공장장을 지낸 1999~2005년 기간 고려아연의 아연 생산량은 약 30만 톤에서 40만 톤 이상으로 급증했다. 아연뿐 아니라 연과 금, 은 등 유가금속 회수율을 지속 끌어올리면서 고려아연 매출 규모를 지난 2000년 1조 원 수준에서 작년 10조 원으로 10배가량 성장시키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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