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시공사 공사비 합의 못하면
합의 실패 책임 두고 소송 발생
기존 판례 대부분 조합 책임 인정
최근 시공사 책임 인정한 판결 나와
시공사들의 공사비 인상 요구로 정비업계가 몸살을 앓은 지도 상당한 시일이 흘렀다. 원자재와 인건비 폭등을 근거로 한 시공사의 요구를 체념하며 받아들인 조합도 있다. 반면 조합원들 설득이 어렵다며 계약 해지와 함께 새로운 시공사를 찾아 나선 조합도 있다.
저마다의 특수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양쪽 모두 나름의 근거와 합리적 이유가 있다. 시공사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쪽은 대체로 연속성과 안정성을 통한 신속한 사업 진행에 가치를 둔다. 사업비와 조합원 분담금 증가 자체에 집중하면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무게의 추가 기운다.
지루한 협상을 통해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조합이 시공사에 결별을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 훈훈했던 예전의 관계는 순식간에 휘발되고 살풍경한 소송전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소송 초기 건설사들은 계약 해지의 효력을 부인하며 시공사 지위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돈의 문제로 비화한다. 즉 부당한 해지에 따라 시공사가 입게 된 손해를 조합이 배상할 책임이 있느냐, 있다면 금액은 어느 정도냐가 소송의 핵심이 된다. 결론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공사비 인상 이슈로 합의에 실패하고 판이 깨진 것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다.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새삼스레 불거진 이슈가 아니다. 그래서 그간 쌓인 소송 사례도 여럿이다. 대체로 판례는 공사비 인상 합의에 실패한 것이 시공사 책임은 아니라고 본다. 조합이 계약을 해지하면 시공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런 결론이 대세로 굳어지자 다른 판례들도 뒤따라 등장했다. 총회에서 계약 해지 안건을 의결할 때 손해배상 책임을 함께 세트로 묶어 조합원들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해지 자체가 무효라는 판례가 대표적이다. 이 또한 주류 판례가 되었다.
최근 정비업계가 잠시 출렁일 만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이 등장했다. 판결 취지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시공사가 상당한 수준의 공사비 인상을 요구할 때 그 인상을 뒷받침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와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또 이런 근거 제시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계약이 해지됐다면 그 파탄의 책임은 시공사에 있다고 봤다. 요즘 웬만한 시공사들의 공사비 인상 요구는 평(3.3㎡)당 공사비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수준이라 대부분이 이번 판례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적정 공사비는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시공사, 브랜드, 시공 현장의 입지와 구체적 설계 내용, 시공 방법, 건설 자재나 인건비, 금리 수준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 판결은 기존 판결과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사안을 조망해 공사비 협상에 기준을 보태준 것으로 보인다. 먼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시공사 측에 증액에 관한 합리적인 설명과 근거 자료를 제시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그 결과 시공사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 발생한 계약 해지에 대해 조합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했다.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합리적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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