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중고 거래 전성시대… 10명 중 6명 꼴로 중고거래 앱 설치
지난달 2264만 명 사용, 역대 최대… 고물가에 저렴한 중고 관심 커지고
‘가치소비’하는 MZ세대 인식 영향… ‘당근’, 지역 사랑방 역할로 차별화
‘번개장터’, 명품 검수 서비스 도입… ‘중고나라’는 사기 방지 시스템 구축
《중고거래앱 2000만명 넘게 몰린 까닭
지난달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중 2264만 명이 중고 상품을 거래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했다. 전체 인구의 40%가 넘는다. 고물가 영향과 함께 환경 등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MZ세대 소비 성향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직장인 정미연 씨(33)는 검은색 ‘프라이탁’ 백팩을 갖고 싶어 지난해 서울 시내 매장을 한 달간 들락거렸다. 결과는 실패. 공식몰에서도 해당 제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은색은 인기가 많아 금세 재고가 소진된다는 설명만 돌아왔다. 속상해하던 정 씨에게 한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번개장터에 한정판이 많다던데 한 번 찾아봐”라는 게 아닌가. 정 씨는 진짜 번개장터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원래 가격에 웃돈을 줬지만 매장에서 구하기도 힘든 제품을 살 수 있어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중고 거래 시장이 호황을 맞이했다. 고물가 상황과 맞물려 ‘실속파’가 많아진 것도 있지만 꼭 원하는 물건의 경우 중고도 상관없다는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 등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2008년 4조 원이었던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21년 24조 원까지 불어난 데 이어 내년에는 43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 중고 거래 플랫폼 사용자 수 역대 최대
중고 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를 표본 조사한 결과, 지난달 중고 거래 앱 설치자 수는 3378만 명, 사용자 수는 2264만 명으로 집계됐다. 둘 모두 역대 최대치다.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중고 거래 앱을 설치했고, 4명 이상이 실제 앱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고 거래가 활성화된 배경으로는 높은 물가로 인한 부담을 덜고자 하는 소비자 인식과 중고 거래 플랫폼들의 전문화가 꼽혔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황기에 저렴한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데다 플랫폼들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거래 편의성이 높아짐에 따라 소비자들을 중고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 보호 등 가치 소비에 무게를 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인식 변화도 중고 거래 활성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는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대두되면서 쓰레기를 줄이는 중고 물품 소비에 대한 관심도가 커진 것도 거시적으로 중고 거래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내 중고 시장은 당근,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 3개 플랫폼이 각기 다른 특색을 갖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플랫폼별로 제품 카테고리나 품목이 분화돼 있어 소비자들도 선호도에 따라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이 다른 경우가 많다.
● 주운 지갑도 찾아주는 동네 사랑방, 당근
최근 급성장한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당신의 근처)은 근거리 기반의 플랫폼으로 최근엔 동네 주민들의 커뮤니티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당근마켓에서 ‘마켓’을 떼어내고 중고 거래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네 기반 서비스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근에는 ‘270번 버스에서 스투시 지갑 잃어버리신 분 계신가요?’ 같은 글도 자주 올라온다.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이용자가 올린 글이다. 이처럼 당근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웃과 단순히 물품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목소리를 전달하는 동네 사랑방 역할까지 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 만나 대면 거래를 하면서 비대면 거래의 우려를 줄인 당근은 ‘입소문’으로 급성장한 사례다. 당근의 누적 가입자 수는 올해 7월 기준 3900만 명,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1900만 명에 육박한다.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웃끼리 동네 정보나 소식을 나누고,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당근 내 게시판 ‘동네생활’에 등록된 글은 지난해 약 2500만 건으로 1년 전보다 15% 증가했다. ‘구파발천 러닝크루’ ‘5060 맨발 걷기 모임’ ‘배드민턴 모임’ 등 다양한 관심사와 연령대에 따른 ‘모임’ 서비스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당근의 지역 커뮤니티로의 사업 확장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6% 증가한 1276억 원, 영업이익은 173억 원으로 회사 설립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근 관계자는 “지역 커뮤니티 사업을 본격화한 2020년에는 매출이 118억 원이었는데 3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 패션 놀이터 번개장터-중고 거래 시초 중고나라
번개장터는 다른 중고 거래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패션 부문 거래에서의 강점을 내세운다. 지난해 번개장터는 패션 부문 거래액이 1조 원을 넘어섰다. 전체 거래액 중 MZ세대의 거래가 약 76%로 스니커즈, 명품 등 브랜드 패션 상품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사용자 수는 약 468만 명이다.
번개장터는 ‘믿고 살 수 있는 중고 명품’ 비대면 거래 시장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번개장터 중고 명품 거래액은 2022년 대비 84% 성장했다. 여기에는 중고 명품 검수 서비스 ‘번개케어’ 영향이 컸다. 2022년 선보인 번개케어는 번개장터가 직접 정품, 가품 여부를 가려낸 후 세탁과 폴리싱(광택)까지 해서 구매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다. 지난해 번개케어를 통한 거래액은 전년 대비 160% 증가했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이용자들 사이에서 번개장터는 패션 아이템, 굿즈, 피규어 등 각종 한정판 제품들을 구하기 쉬운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의 시초는 2003년 네이버 카페에서 시작한 중고나라다. 당근과 번개장터처럼 뚜렷한 특색은 부족한 편이지만 본연의 중고 거래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가도 있다. 업력이 오래된 만큼 가장 많은 거래 데이터를 갖고 있다. 중고나라에 따르면 모바일 앱과 네이버 카페 회원을 합치면 이용자는 2600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거래액은 5조 원으로 관련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중고나라는 중고 거래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만큼 안전한 거래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주요 피해 패턴을 발굴하고 머신러닝 기법을 도입해 이상한 거래를 자동으로 검출하는 등 오랫동안 사기 방지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플랫폼들의 치열한 경쟁을 발판 삼아 국내 중고 거래 시장이 더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물가가 안정된다고 해서 중고 거래가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젊은층 가운데는 자원 순환, 환경 보호 등 ‘정의로운 소비’에 관심이 큰 사람이 많은 만큼 중고 거래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소비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