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며 3년 2개월 만에 통화 긴축을 마무리하고 완화 기조로 돌아섰다.
1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3.25%로 내렸다. 2021년 8월 이후 이어진 통화 긴축 기조가 38개월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금융통화위원 7명 중 6명이 기준금리 인하에 동의했으며 장용성 금통위원만 금리 동결 소수 의견을 냈다.
그간 수도권 집값 과열 우려 등으로 금리 인하를 주저하던 한은이 결국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을 단행한 것은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내수 부진이 심각해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 경제는 올 2분기(4∼6월) 0.2% 역성장하는 등 경기 침체 우려가 심상치 않다. 이창용 총재는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긴축 완화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금리 인하 배경을 밝혔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하면서 한미 금리 격차가 줄어든 것도 한은의 통화 정책에 숨통을 터줬다. 긴축 종료로 고금리에 시달렸던 서민 대출자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자금 조달 부담이 컸던 기업이나 얼어붙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도 온기가 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리인하로 대출 이자 年6조 감소… 집값 상승 자극 우려도
[38개월만에 긴축 종료] 내수부진 속 기준금리 0.25%P 인하 9월 가계대출 증가폭 줄어 진정세… “소비 0.18%-설비투자 0.7% 늘것” 내수 활성화 숨통 기대감 커져… “이미 선반영… 효과 적을것” 관측도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만에 통화 긴축 기조를 마무리하고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선 데는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내수 부진 심화가 자리 잡고 있다. 가계 빚에 짓눌려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데다 돈을 벌어도 빚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투자도 감소하고 있다. 결국 더 늦기 전에 금리 인하로 부진한 내수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판단에 망설이던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꺼낸 셈이다.
당장 금리 인하로 가계의 대출 이자 부담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이번 인하 결정에 따라 가계의 이자 부담액은 연 2조5000억 원, 기업의 이자 부담액은 연 3조50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반영돼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나오지 않을 경우 경기 부양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금리 인하로 인해 서울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하거나 가계대출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 가계·기업 이자 부담 연 6조 원 감소 예상
11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소비는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이고 내수 개선도 빠르지 않다”며 “가계 부채 등으로 고통받는 계층이 많다”고 했다. 건설 투자 등도 부채 문제로 부진하다고 지적하면서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피벗을 주저하게 했던 수도권의 집값 급등세가 진정되고 대출 증가세도 다소 잠잠해진 것도 금리 인하의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11일 금감원에 따르면 9월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 폭은 5조2000억 원으로 8월(9조7000억 원)에 비해 증가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시장에서는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민간 소비와 기업들의 투자가 감소했던 만큼 이번 금리 인하가 내수 활성화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연구위원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경우 민간소비는 9개월 후 최대 0.18%가량 늘어나고, 설비투자도 0.7%가량 증가할 것으로 본다”며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내수 회복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 부족으로 멈춰 섰던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도 금리 인하가 가뭄에 단비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내 부동산 PF 대출액은 200조 원이 넘는 상태로, 이자 부담만 연간 수십조 원에 달한다. 금리 인하로 인해 이자 부담도 줄고 신규 자금 유입 가능성도 커졌다는 것이다.
● “효과 불투명” 분석도… 집값 상승 등 부작용 우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됐지만 기대만큼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중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3년물 국고채 금리가 지난해 12월부터 이미 기준금리를 밑돌았다”며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에 이미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고 지적했다. 정영도 한양증권 기업투자본부 본부장도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단행돼야 (PF 관련)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한은의 금리 인하 결정이 도리어 진정됐던 부동산 가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기준금리가 더 떨어지면 시중은행도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며 “이자 부담이 크게 줄면 다시 주택 매수세가 몰리면서 서울 집값이 크게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최근 한은 안팎에서 제기되는 금리 인하 실기론에 대해선 “1년 뒤에 평가해 달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8월)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았는데도 가계대출이 10조 원 가까이 늘었다. 정말 실기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지면서 불거진 불화설에 대해서는 “정부와 사이가 굉장히 좋다”며 “공조를 잘해서 나라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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