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국가 간 부의 차이’에 대해 연구해 온 대런 애스모글루(57)와 사이먼 존슨(61)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 미 시카고대 교수(64) 등 3명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3일(현지 시간) “사회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공로를 인정해 이들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국가 간 소득 차이를 줄이는 것”이라며 “수상자들은 이를 이루는 데 있어 사회 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로빈슨 교수와 함께 2012년 펴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각국의 제도가 어떻게 흥망성쇠를 결정하는지, 존슨 교수와 공저한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 진보가 어떻게 사회 불평등을 늘렸는지를 각각 다룬 바 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세계적인 석학이자 스타 작가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올해 열린 ‘2024 동아국제포럼’에서 기조 강연자로 나서서 인공지능(AI) 도입이 인간 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포용적 제도가 국가번영 열쇠”… 정치경제학 진일보시켜
노벨경제학상 애스모글루-존슨-로빈슨 공동수상 “착취적 제도 국가는 정체-쇠퇴”… 남북한 사례로 들며 설명해 화제 애스모글루 “민주주의 옹호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냐” 노벨상 소감 동아금융포럼서 ‘AI 경계론’ 주장도
14일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57)는 정치 제도가 국가의 경제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연구로 정치경제학을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학자다.
튀르키예(터키)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왜 군사 정권하의 튀르키예는 민주주의와 경제 모두 어려울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경제학 공부에 빠져들었다고 전해진다. 애스모글루 교수가 공동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와 2012년 펴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국가의 번영 또는 빈곤의 근본 원인을 탐구했다.
● “정치 제도의 질이 경제 성장 좌우”
애스모글루 교수 등은 이 책에서 한 나라의 경제적 성패가 정치·사회 제도의 질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포용적 제도’를 갖춘 국가들은 장기간 번영을 이루지만 이와 반대로 권력과 부가 소수 엘리트에게만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를 가진 국가는 정체되거나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포용적 제도는 민주주의와 사유재산 원칙이 확고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으며, 독점을 방지하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제도를 말한다.
특히 저자들은 남한(포용적 제도)과 북한(착취적 제도)을 그 단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올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북한과 달리 포용적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단, 그는 인터뷰에서 “(남한은) 아직 군사독재 시절의 관치경제, 부정부패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완전한 포용적 경제 제도를 이루기까지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애스모글루 교수는 수상 발표 이후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우리가 한 연구가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광범위하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한 후 “단,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인간 친화적 AI 개발 필요”
이번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사이먼 존슨 MIT 교수와 애스모글루 교수가 함께 쓴 ‘권력과 진보’는 정치·사회적 권력과 기술 발전 방향 간의 관계를 탐구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기술 발전의 혜택이 일부 특권 계층에만 돌아간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중세 유럽에서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부를 귀족들이 독식한 것처럼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혁신이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애스모글루 교수는 올 5월 열린 ‘2024 동아국제금융포럼’ 기조강연과 서면 인터뷰에서 “생성형 AI는 정보에 대한 독점적 통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우리는 AI를 이용한 자동화보다는 인간 친화적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AI가 유망한 기술이라는 것에 회의적인 것이 아니라, AI가 개발되고 사용되는 방향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라며 “AI의 방향이 소수의 기술 리더와 그들의 기업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물리, 화학상 이어 경제학상도 AI가 장식
애스모글루 교수는 1000명이 넘는 MIT 교수 중 뛰어난 연구 실적을 증명한 10명 안팎에게만 부여되는 ‘인스티튜트 교수’다. 2005년에는 38세의 나이로 ‘예비 노벨상’으로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는 등 일찌감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예약해 둔 석학으로 여겨졌다. 시카고대 교수인 로빈슨 교수는 세계은행의 세계개발보고서 학술자문위원을 지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존슨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경제학자를 지내기도 했다.
이들의 수상은 전 세계적으로 정치 권력의 영향력이 커지고, 제도의 차이에 따른 기술적 진보 여부가 국가 간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게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제 성장의 원인을 연구해 온 많은 경제학자가 자본 축적이나 노동 생산성, 기술 진보 등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이 원인이 만들어지는 요인에 대한 분석은 많지 않았다”며 “제도의 중요성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편 물리학상, 화학상에 이어 AI 분야를 다뤄온 애스모글루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가져가며 올해 노벨상의 화두는 AI가 장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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