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로 조명한 평화와 폭력의 어색한 공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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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DA스페셜]진성북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전쟁사

“정식 군대가 벌인 인류 최초의 전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대략 5500년 전, 지금의 이라크 땅인 수메르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 시기의 군대는 이미 천 년 동안 수렵 채집인들이 동물을 잡거나 서로 싸울 때 쓰던 그 무기―창, 칼, 도끼, 그리고 활과 화살까지―로 싸웠겠지만 그들의 숫자는 통상적인 수렵 채집인 무리보다 열 배는 많았고, 단 한 명의 지휘관의 통솔하에, 적어도 몇 분 이상 서서 싸웠을 것이다. 수렵 채집인은 이동 생활의 특성상 일정한 공간에 정착하지 않았기에 그들만으로 싸울 수는 없고, 농사를 짓는 이들의 정착 생활 특성으로 볼 때 자신들의 농업 지역에 대한 애착심이 강해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였을 것이다.”-책 중에서

수천 년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긴 전쟁의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오늘날의 인류는 아이러니하게도 미사일, 폭격기, 핵무기와 드론 등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다. 군 지휘부는 여전히 무력 계획을 수립하고 병사들에게 전투 훈련을 시키고 있다. 세계열강 대다수는 끊임없이 국방 예산을 계속 증액하며 언제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살얼음판의 일상조차 차츰 균열이 일고 있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겪으며 시민조차 어색한 평화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오랜 휴전 국가로서 한국전쟁 후 눈부신 경제 발전과 민주 사회를 동시에 이룩하면서 선진국 반열에 위치한 우리에게는 어쩌면 전쟁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고 작동하는지 전쟁의 본질을 깊이 있게 분석한 이 책은 무력 충돌 위험이 상존하는 한반도에도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멀리하고 싶은 이웃과 다름없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에 대해 그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전쟁사’(사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비교적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전쟁의 위협이 존재함을 성찰하는 책이다. 저자는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과 함께 전쟁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지속돼 왔는지를 탐구한다. 고대 원시 사회의 충돌부터 시작해 수렵 채집 시기, 예리코와 수메르의 패권 쟁탈,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 로마-카르타고 전쟁,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미국 남북전쟁, 제1, 2차 세계대전까지 거의 모든 주요 전쟁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책에서 하나의 장을 담당하는 ‘핵전쟁에 관한 짧은 역사’는 읽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워낙 파괴력과 그 이후의 여파가 강한 핵무기는 보유한 숫자와 상관없이 몇 발만으로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게 된다. 저자는 과거 쿠바 미사일 위기와 과학자들이 분석한 핵폭발 이후 여파를 사례로 들며 현재 인류가 얼마나 위험한 무기와 이웃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는 전쟁의 역사를 나열하는 동시에 ‘죽이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도 조명하고 있다. 눈앞의 적 대신 허공에 발포하거나 드론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목표를 제거한 뒤에도 정신적인 충격을 겪는 이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전쟁사’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전쟁을 끝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책이다.

#Leisure&DA스페셜#진성북스#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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