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역대 최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을 받았던 2020년보다 경영 상황이 더 나빴다. 글로벌 경기 둔화, 내수 부진, 고금리가 겹치면서 반도체 등 대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든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 안정성도 악화해 1년간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은 10곳 중 4곳이 넘었다.
한국은행은 23일 ‘2023년 기업경영 분석 결과’에서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 기업(93만5597개)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해 이같이 발표했다. 분석 결과 전년 대비 매출액 증가율은 1년 전(15.1%)보다 16.6%포인트 하락한 ―1.5%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0년( ―1.1%)보다 낮은 수치다. 대기업의 매출 하락 폭이 특히 컸다. 2022년 15.5%의 매출액 증가율을 보였던 대기업은 2023년 ―4.3%로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강영관 한은 경제통계국 기업통계팀장은 “주요 대기업이 많이 포함된 반도체, 석유화학 등 주요 업종에서 성장세가 크게 감소하면서 역대 최저 숫자가 나온 것”이라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서 매출, 영업이익 등 지표가 특히 안 좋았고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매출 하락 폭이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업 영업이익률 3.5%, 최저 수준 뒷걸음
작년 기업 실적 최악 경기둔화 속 고금리 이어진 영향 “반도체 실적 등 올해는 개선 전망”
기업 매출액 증가율을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이 2022년 14.6%에서 지난해 ―2.3%로 대폭 하락했다. IT 기기 및 서버 수요 둔화로 반도체 수출이 감소하며 전자·영상·통신장비(5.0%→―14.5%)의 매출 하락 폭이 컸고, 국제원유 가격 하락 등으로 수출단가가 떨어지며 코크스·석유정제(66.6%→―13.8%) 제품도 매출이 크게 줄었다. 비제조업 부문에선 도소매업(12.1%→―2.1%)과 운수·창고업(25.5%→―9.0%)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매출액이 전년 대비 0.9% 줄었다. 도소매업의 경우 경기 둔화에 따라 원자재 트레이딩 매출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
● 경기 둔화에 고금리 겹쳐 기업 수익성 악화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은 191.1%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저치였다. 1년 전(348.6%)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로, 평균 기업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의 2배가 채 안 됐다는 의미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241.3%)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기업들이 전년보다 돈을 더 못 버는 가운데, 고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이 이어지면서 수익성과 이자 지급 능력이 뒷걸음질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출 이자를 갚기 버거운 기업들도 많았다.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취약기업’ 비중은 42.3%로 2009년 통계 편제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2022년 수준을 이어갔다. 이자보상비율이 100%보다 낮으면 기업이 한 해 동안 번 돈이 대출 이자보다 적다는 걸 의미한다.
다만 이자보상비율은 분모에 해당하는 이자 비용이 ‘0’인 경우 지표에 반영되지 않는 한계를 갖는다. 이를 보완해 한국은행이 새롭게 적용한 ‘수정 영업자산이익률’에 따르면 영업이익보다 이자 비용이 큰 기업 비중은 47.8%였다. 사실상 지난해 우리 기업의 절반 가까이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한 셈이다. 기업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도 2022년 4.5%에서 3.5%로 하락해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 “올해는 기업 수익성 개선 전망”
다만 올해는 전년보다 기업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강영관 한은 경제통계국 기업통계팀장은 “상반기(1∼6월)까지 기업의 성장성 지표가 좋았고, 3분기(7∼9월)의 경우 반도체 업종의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하향 조정되고 있지만 실적 자체는 좋게 나오고 있어서 올해는 높은 매출 증가율과 영업이익률 수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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