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의 사다리’ 잃어버린 청년세대]
대졸공채 없애고 즉시 전력감 원해
‘中企 징검다리’ 삼는 중고신입 늘어
“노동시장서 20대는 불행한 세대”
서울 서초구에 사는 최모 씨(28·여)는 다음 달부터 한 화장품 관련 중소기업에 출근할 예정이다. 그런데 최 씨는 벌써부터 최소 3, 4년 이상 경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이직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최 씨는 의료기기 분야 중소기업이 첫 직장이었지만 보수 때문에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퇴사를 선택했다. 최근 대기업 채용이 줄면서 다시 중소기업에 지원했지만 이곳을 두 번째 징검다리로 삼아 대기업에 입성하겠다는 것이다. 최 씨는 “요즘 중소기업 월급으로는 결혼, 출산을 꿈꾸기가 힘들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보수도 높은 대기업 취업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에서는 최 씨와 같은 ‘중고 신입’의 입사가 늘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이 그룹 단위로 대규모 채용에 나서던 공채 제도를 없애고 수시 채용에 나서면서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바로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23일 동아일보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신규 채용 정보를 공개 중인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5개사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은 지난 3년 동안 국내에서 연평균 2만6100명가량을 신규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15개 기업에는 연령별 채용 규모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삼성전자, 삼성SDI를 제외하고 SK하이닉스와 현대자동차, 기아, LG에너지솔루션, 네이버 등이 포함돼 있다. 포스코홀딩스와 KB·신한·메리츠 등의 지주사가 계열사 채용을 함께 집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를 대표하는 30곳 이상의 대기업이 연평균 1000명에 못 미치는 인력을 새로 뽑은 셈이다.
이들 기업의 20대 청년 채용 비율은 2021년 57.5%에서 2022년 54.8%, 지난해 50.8%로 계속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대표적인 양질의 일자리로 꼽히는 대기업 신규 채용에서 20대의 비중이 전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에는 대기업들도 뽑아서 키우는 것보다는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인력을 뽑으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2, 3년 정도 근무 경력이 있는 경우에는 신입 사원으로 뽑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직 400명을 포함해 1만765명에 이르는 인력을 신규 채용한 현대차의 경우 20대 채용 비율이 54.7% 수준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관계자는 “2019년 그룹 차원의 공채를 폐지한 이후 상시 채용을 통해 부문별로 20대뿐만 아니라 30대 이상의 경력직, 연구직 채용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박사급 인력과 경력직 채용이 많은 SK하이닉스와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20대 채용 비율이 30∼40%대에 그쳤고 퇴직자 재고용을 진행 중인 신한금융그룹에서는 50대 이상의 신규 채용 비중이 20%를 넘겼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모습이 경제와 기업의 성장 속도가 확연히 더뎌진 한국의 상황을 잘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 수요에 비해 노동 공급이 훨씬 커진 상황에서 이직까지 활발해지면서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는 20대 청년이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며 “노동 시장 여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20대는 ‘불행한 세대’”라고 말했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세종=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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