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의 사다리’ 잃어버린 청년 세대]
부동산 보유따라 자산 증가 큰 차이… “세대간 자산 양극화 확대될 것”
천정부지 집값, 영끌해도 감당못해
“청년들 부동산 통한 자산증식 포기”
내년 4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신모 씨(35)는 신혼집으로 서울 강서구 화곡동 A아파트를 매입하려다 포기했다. 2년 전만 해도 9억 원 안팎이던 전용면적 59㎡의 매매가격이 최근 11억 원 후반대까지 상승한 탓이다.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 아파트 가격이 더 뛸 것이란 전망에 무리해서라도 매입에 나서려 했지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쓸 수 있는 현금이 5억 원 정도로 우리 나이대에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데 아파트 매입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며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의 전세를 6억 원에 계약해 다음 달 입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11년간 20대 이하의 순자산이 30% 늘어나는 동안 65세 이상의 순자산은 8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 ‘부동산 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의 특성상 부동산 보유 여부에 따라 자산 증가 속도가 달라진 것으로 풀이된다. 영끌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파트값이 뛰면서 위 세대와의 자산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아파트 구입에 나서는 20, 30대도 줄고 있다. 이대로라면 ‘부(富)의 사다리’가 흔들리며 세대 간 자산 양극화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진다.
● 20대 순자산 30% 늘 때 65세 이상 85% 급증
24일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만 29세 이하인 가구의 순자산은 2012년 7671만 원에서 지난해 9954만 원으로 11년간 2283만 원(30%)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만 65세 이상 가구주의 순자산이 2억4550만 원에서 4억5540만 원으로 2억990만 원(85%)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동산 보유 여부가 순자산 증가율을 가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1평(3.3㎡)당 평균 매매가격은 2012년 1월 1063만9000원에서 2023년 12월 1823만9000원으로 71.4% 뛰었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보유가 쉽지 않은 젊은 세대보다 중장년층이 자산을 늘리기 유리한 구조라는 의미다.
한국 가계의 자산은 지나치게 부동산에 쏠려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총자산은 5억2727만 원. 이 중 부동산 자산이 3억7677만 원으로 71.5%에 달했다. 주요 선진국은 다른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2022 주요국 가계금융자산 비교’에 따르면 미국의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의 비중은 28.5%였고 일본(37.0%)과 영국(46.2%) 등도 한국보다 훨씬 낮다.
● 아파트값 급등에 영끌마저 포기하는 젊은 세대
한국에선 부동산이 부의 사다리를 오르는 주요 수단인 탓에 부동산 상승기에는 무리하게 대출을 내서라도 집을 사려는 젊은 세대가 흔했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두 달간 서울 아파트값이 1.7% 뛰었던 2020년 7∼8월 20대 이하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은 3.5%로 1년 전 같은 기간(2.8%)보다 0.7%포인트 증가했다. 30대의 매입 비중 역시 34.5%로 전년 동기(29.7%)보다 4.8%포인트 증가했다. 부동산담보 대출에 신용대출, 회사 사내 대출 등을 총동원해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20, 30대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부동산 시장은 2022년부터 침체기로 돌아섰고 올해 4월부터 다시 상승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상승기에는 젊은 세대가 아파트 매매에 적극 나서고 있지 않다. 두 달간 서울 아파트값이 2.5% 뛴 올해 7∼8월 20대 이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은 1.9%, 30대 이하 역시 32.1%에 그쳤다.
부동산 업계 전문가들은 천정부지로 솟은 부동산 가격에 청년들이 영끌마저 포기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서울에서 실거래된 아파트 1평당 평균 매매가격은 2020년 3분기(7∼9월) 약 3800만 원 수준에서 올해 3분기 약 5100만 원으로 급등한 상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아파트값이 영끌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으면서 청년들이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을 미리 포기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앞으로 세대 간 자산 양극화는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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