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주축 수출 0.4% 뒷걸음질
민간소비-설비투자 늘었지만
연간 2.4% 성장 목표달성 빨간불
올해 3분기(7∼9월) 한국 경제가 전 분기보다 0.1% 성장하는 데 그치면서 예상치를 크게 하회했다. 내수가 다소 회복됐지만 우리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이 뒷걸음질하면서 분기 성장률이 한국은행 전망치(0.5%)의 5분의 1 수준에 머무른 것이다. 연말까지 수출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며 연간 성장률 전망치(2.4%)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4일 한은은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1% 증가했다고 밝혔다. 2분기(4∼6월) 역성장(―0.2%) 충격에서는 벗어났지만 기존 예상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3분기 성장률 쇼크는 한국 경제의 주축인 수출이 전 분기 대비 0.4% 감소한 영향이 컸다. 화학과 자동차 등의 수출 부진이 계속된 가운데 반도체의 수출 증가세마저 꺾인 결과로 풀이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의 여파로 건설 투자도 전 분기 대비 2.8% 감소했다. 다만 침체 우려가 컸던 민간소비는 전 분기 ―0.2%에서 0.5%로 상승 전환했고, 설비투자도 6.9%로 성장했다.
2분기에 이어 3분기까지 경제 지표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한은의 연간 성장률 전망치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앞선 8월 한은은 경제수정전망을 통해 연간 경제성장률을 2.5%에서 2.4%로 0.1%포인트 낮췄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8월에 발표한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4분기(10∼12월)에만 1.2% 성장해야 하는데, 산술적으로 달성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한은은 11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2.4%)를 한 번 더 내려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률 부진에 기획재정부도 경기 동향 점검에 나섰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찾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지에서 회의를 열고 “내수 회복 과정에서 수입이 증가하고 수출이 조정받으며 성장 강도가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며 “내수·민생 대책의 집행을 가속화하고 미 대선, 주요국 경기, 중동 정세 등 대내외 여건을 면밀히 점검해 대응 방향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도체 경기 꺾이며 수출 0.4% 뒷걸음… 올 성장률 2% 초반 우려
3분기 성장률 0.1% 쇼크 월가 중심 ‘반도체 겨울론’ 불거져… 무디스 “韓경제 위험에 놓여” 경고 中 경기침체-美보호무역 겹악재… 내년 성장률, 올해보다 더 낮을수도
믿었던 수출마저 흔들리면서 한국의 수출 중심 성장 경로에 ‘경고등’이 켜졌다. 중국 경기 침체, 미국 대선 불확실성 등으로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면 올해 연간 성장률이 2%대 초반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한국은행 예상치(0.5%)의 5분의 1 토막인 0.1%에 그친 데는 수출 부진의 영향이 컸다. 수출은 올해 1분기(1∼3월)에 1.8%, 2분기(4∼6월)에 1.2% 성장하면서 성장률을 견인했다. 하지만 3분기에는 0.4% 감소했다. GDP 성장 기여도 측면에서도 순수출이 0.8%포인트 떨어져 성장률을 1% 가까이 갉아먹었다.
석유 화학 분야의 수출 부진이 길어지는 가운데 자동차와 반도체마저 휘청거린 결과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자동차와 2차전지 등 화학제품 수출이 부진했고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수출 증가율도 2분기보다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승승장구하던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꺾인 것은 우려되는 대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올해 한국 경제는 반도체가 지탱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해 상반기(1∼6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수출액은 1088억5000만 달러(약 150조2239억 원)에 달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2022년 상반기(1224억6000만 달러)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수출액이 많았다. 이는 전체 ICT 수출 가운데 60.4%를 차지했던 반도체의 역할이 컸다. 그랬던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주춤해진 것이다.
앞으로도 수출 여건은 크게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질 경우 우리 수출기업들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고, 중국 경제의 부진도 우리에겐 부담이다. 반도체 경기도 심상치 않다.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반도체 겨울론’이 불거지더니, 최근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노광 장비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의 3분기 실적이 전망치를 크게 밑돌았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4일 “강력한 성장을 보였던 수출이 감소하면서 한국은 성장동력을 잃었다”며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반도체 출하량 호조가 올해 수출 급증을 견인했는데, 반도체 슈퍼 사이클 변동성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는 위험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 초반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4분기(10∼12월)에도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양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럴 경우 한국의 연간 성장률은 2% 초반에 머무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 등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국발 보호무역 강화가 겹칠 경우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은 올해보다 더 낮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한은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연속해서 빗나가는 것과 관련된 쓴소리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정 산업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한 상황에서 거시 경제 전망으로만 성장률을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반도체나 자동차, 화학 등 산업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육성해야 좀 더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한은의 3분기 GDP 발표 이후 채권 시장에서 국채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연구위원은 “성장률 부진에 따라 금리 인하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 시장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스피는 전일 대비 0.72% 빠진 2,581.03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도 1.42%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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