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더불어민주당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법제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정기국회 내에 처리할 방침을 밝히면서 재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를 비롯한 개별 주주들이 해당 조항을 빌미로 회사의 중장기적 경영 판단을 제약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에도 사례가 없어 한국 기업에 대한 역차별 우려도 나온다.
야당이 추진하는 개정안은 현행 상법의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에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를 위하여’라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주주 보호를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재계는 한국 기업들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주주가치를 올리자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이를 법제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부작용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소송전이 남발되고, 단기 투자자들이 반대하는 장기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1980년대 삼성의 반도체 진출 선언은 당시로서는 사업적 반대가 심했다. 상법 개정안이 당시에 통과됐다면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뚝심으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왔던 한국 기업들의 장기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4세로 세대교체를 하며 경영권이 약해진 국내 주요 기업들이 이미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조항이 해외 펀드의 ‘진입로’를 열어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 주요 기업 주주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다. 재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해외 투자자들과 연합해 경영권을 공격한 사례는 꾸준히 있어 왔다. 주주 충실 의무 조항이 명시되면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경영 판단 하나하나를 문제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 수는 2020년 10곳에서 2022년 49곳으로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영국계 헤지펀드 팰리서캐피털이 SK스퀘어 지분 1% 이상을 확보한 뒤 이사회 구성 변경을 주장하거나, 국내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두산밥캣의 1조 원대 자금을 배당 확대에 쓰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등 주요국의 법에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로 한정돼 있다. 한경협에 따르면 미국 모범회사법은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믿는 방식으로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 일본의 회사법이나 독일 주식법도 마찬가지로 이사의 의무와 관련해서는 회사에 책임을 지거나,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고 규정돼 있다.
일각에서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이사의 충실의무(Duty of Loyalty)’ 대상에 주주가 포함된 근거로 제시하지만, 이는 회사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라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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