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기업집단에 소속된 계열사 간 내부 거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시 대상 기업집단의 전체 매출액 가운데 내부 거래 비중은 33.4%였다. 거래액도 752조5000억 원에 달했다. 계열사 간에도 필요한 거래는 있기 때문에 모든 내부 거래가 위법한 것은 아니다. 이때 내부 거래가 부당한지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바로 정상 가격이다.
공정거래법상 정상 가격이란 비정상적인 판단이 개입되지 않았을 때 정상적으로 매겨지는 시가(市價)를 뜻한다. 여기서 얼마나 벗어났는지에 따라 부당 이익이 산출되고 과징금 규모가 결정된다. 그동안 정상 가격을 어떻게 산출하는지 알 수 있는 선례는 거의 없었다. 8월 공정위는 중견그룹 A사에 대한 내부 거래 제재 사실을 발표하며 “정상 가격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경제 분석을 실시했다”고 강조했다. 이후 해당 조치에 대한 의결서가 공개되면서 정상 가격 산정에 통계 분석 모형인 이중차분법과 대체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자 시장에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경제학을 전공해야만 알 수 있는 복잡한 계량 경제 방법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좀 더 적용이 쉽고 합리적인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기업들은 새로운 내부 거래 때마다 복잡한 경제분석 모형으로 정상 가격을 계산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정상 가격을 어떻게 매길지 참고할 만한 국내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국내법에는 공정거래법의 정상 가격과 유사한 개념을 다루는 법률이 있다. 바로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국조법)이다. 국조법은 해외 특수관계자와 거래한 가격이 시가에 해당하는지를 규율한다. 이는 ‘이전 가격(Transfer Pricing) 규정’이라 불리며 국제 표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침을 따르고 있다. 이 지침은 지난 30여 년간 세계 각국의 이전 가격 분석 틀로 작동해 왔다. 공정위 행정지침에서도 거래 시가를 확인할 수 없다면, 이전 가격 규정인 국조법 제8조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공정위가 복잡한 통계 분석 방법을 꺼내든 배경이 궁금하다.
해마다 내부 거래가 증가하면서 기업이 정상 가격을 사전에 평가하고 대비할 필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의 정상 가격 분석 기준은 좀 더 적용하기 쉽고 시장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미 공정위 행정지침에서 규정된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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