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워싱턴은 ‘폭풍전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인단뿐 아니라 전체 유권자 투표수에서도 50% 이상의 득표율을 확보 중입니다. 공화당 후보가 득표수에서도 승리한 건 아들 부시 대통령 이후 20년만입니다. 트럼프는 이 강력한 ‘권한(mandate)’을 통해 보편관세 등 정책을 일사천리로 펼칠 겁니다”(여한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트럼프 재집권으로 산업 불확실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1일 한국경제연합회가 마련한 좌담회에 참여한 전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4인은 “제조업 등 한국의 ‘강점’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아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좌담회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산업부 통상자원본부장을 역임한 김종훈 전 국회의원,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여한구 피터슨국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참석해 트럼프 2기 통상정책을 전망하고 민·관의 대응책을 제언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자유무역협정(FTA)등 한국의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요직(要職)이다.
이들은 트럼프가 10~20% 보편관세 및 중국 수입품에 대한 최대 60%의 관세를 부과하는 통상정책을 빠르게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했다. 유 교수는 “(공화-민주) 양당의 초당적 동의를 받고 있다고 확신에 찬 트럼프 정부가 보편관세 등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며 “(보편관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한 것이기에 면제가 될 거라는 건 안이한 생각이다. (트럼프 정부는) 동맹, FTA에 (상관 없이) ‘경제적 수치’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높은 관세장벽을 주변국과의 협상을 위한 카드로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 위원은 “취임과 동시에 보편관세를 발표하고, 발효기간에 유예를 둔 뒤 이 기간에 개별국가와 협상을 하는 식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보편관세 예외를 받을 수 있는 논리와 협상카드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FTA협상 수석대표로 활약한 바 있는 김 전 의원은 “보편관세가 추진된다면, (관세를 우려해) ‘덜 팔자’라는 전략보다는 경쟁력 있는 항목을 ‘더 사자’는 전략도 구사할 수 있다. 에너지, 로켓기술, 항공기 등 분야는 충분히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적자 해소를 통한 경제재건을 핵심 공약으로 삼고 있다. 이에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분야가 ‘정조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여 위원은 “(트럼프 1기 당시) 국가안보 위협 우려가 있는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철강뿐 아니라 자동차에도 적용하려 했었다”며 “현재 한미간 ‘0’, 미국에선 2.5%인 자동체 관세율을 높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도 “일본이 한창 미국에 흑자를 낼 때 미국이 구사했던 정책 중 하나가 특정 숫자 이상으로 팔지 못하게 하는 ‘자발적 수출자제’였다. (트럼프 정부도) 자동차에 대해 이를 소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IRA는 ‘부분적 개정’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유 교수는 “IRA를 폐지한 다음, 공화당의 입맛에 맞게 바꿔 의회를 통과시킬 가능성이 있다. 한국 기업은 투자한 지역 의원을 대상으로 우리의 요구사항을 제시할 수 있도록 판세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보조금 자체가 축소될 가능성은 많다. 미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보조금이 가는 식의 조정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강력한 ‘제조업’ 분야를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카드로 내놓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박 원장은 “미국은 현재 기술력이 있어도 물건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고급 첨단제품 제조에 있어서는 세계 최상위권인 만큼, 기술인력 교류나 공동 연구개발(R&D)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이자는 대안을 트럼프 정부에 제시할 수 있다”며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조선-선박기술력을 주고, 석유, 가스 등 에너지를 수입하는 현실적인 대응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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