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경제가 만난 사람] ‘유럽의 IMF’ 유럽안정화기구 그라메냐 총재 인터뷰
“관세 인상 등 변동성에 대비할 때… 분열 커질수록 무역협력 원칙 필요
47건의 전쟁 속 세계화 흐름 둔화… ‘국가간 상호협정’ 중요성 더 커져”
‘유럽의 국제통화기금(IMF)’ 격인 유럽안정화기구(ESM)의 피에르 그라메냐 총재가 한국을 찾았다. ESM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이어 2013년 공식 출범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상설 구제금융 기관이다. 7000억 유로(약 1030조 원) 상당의 구제기금을 운용하면서 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에 시장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지원한다.
ESM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의 문제아’로 손꼽혔던 남유럽 국가들은 최근 높은 경제성장률을 토대로 유럽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큰 충격에도 유럽 경제가 다시 안정을 찾은 데는 ESM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2년 12월 ESM 총재로 부임한 그라메냐 총재는 한국과 인연도 깊다. 외교관 출신인 그는 1996∼2002년 일본 주재 룩셈부르크대사로 근무하며 한국도 담당했다. 아래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눈 그라메냐 총재와의 문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이 유럽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는가.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대로 관세가 인상된다면 세계 무역량은 줄고 특히 유럽 일부 국가를 비롯해 한국, 중국 등 ‘수출 대국(export champions)’은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평소보다 더 많은 경제적 변동성과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하는 시점인 건 맞다. 하지만 지정학 분열 우려가 커질수록 원칙에 기반한 양자 간, 또는 다자간 무역 협력 관계는 결코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유럽 경제, 더 나아가 세계 경제가 주목해야 할 글로벌 메가 트렌드는 뭔가.
“지정학적 분열과 기후변화, 인구변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세계화가 둔화되면서 ‘슬로벌라이제이션(Slow+Globalization)’ 현상이 등장했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지구에는 공식적으로 47건의 전쟁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긴장 상황 속에서 ‘무역의 지역화(regionalization of trade·세계를 단일 무역 질서로 통합하는 세계화와 달리 특정 국가 간의 상호 협정으로 무역 장벽을 없애는 것)’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유럽과 한국 간 협력 관계가 대표적 예다. 이달 한국과 EU가 안보·방위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한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정 위기로 국가 부도 사태까지 이르렀던 그리스 경제가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ESM은 유럽 경제 안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앞으로 유럽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유럽 경제의 회복력(resilience)은 강하다. 많은 이들이 유럽 경기 침체를 예상했지만 침체는 오지 않았다. 유럽 지역의 경제 성장률은 1%대로 높진 않지만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상황은 갈수록 나아질 거다. ESM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키프로스, 아일랜드 등 5개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우리는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을 면밀히 주시하며 부채 부담이 각국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한다. ESM이 없었다면 일부 국가는 유로존에서 이탈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ESM의 존재만으로 유럽은 경제 안정화 효과를 얻는다. 우리는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늘 준비가 돼 있다.”
―한국과는 어떤 협력 관계를 모색하고자 하나.
“우리는 진심으로 다자주의를 신뢰한다. 한국은행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과의 만남을 통해 ESM이 구제금융 기관으로서의 역할 외에도 다자주의가 미래로 나아가는 가장 옳은 방법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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