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침체에 철근 수요 급감
8개사 올해 9월까지 591만t 생산
‘연간 800만t’ 마지노선 붕괴 위기
현대제철-동국제강 감산 비상경영
한국 건설업의 ‘뼈대’인 철근 생산량이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세계 경제 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28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국내 8개 철근 제강사의 누적 생산량(합산)은 전년 동기 대비 21.4% 감소한 591만2418t(톤)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66만 t씩 생산하는 지금의 추세가 이어지면 연간 국내 철근 생산량은 약 790만 t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철근 생산량이 800만 t을 넘은 1994년 이후 처음으로 800만 t 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생산량 급감 원인은 한국의 산업구조가 IT·반도체 등 첨단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 중국산 저가 철근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전방 산업인 건설 경기 침체다. 새로 짓는 건축물이 줄다 보니 철근 수요가 급감한 것이다. 10월 건설경기의 지표이자 건설업체들이 체감하는 경기 수준인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70.9를 기록하며 기준점인 100을 크게 밑돌았다. CBSI가 100을 넘으면 전달보다 경기가 나아졌다고 느끼는 회사가 많다는 의미이며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국내 한 철근 제강사 영업 담당 임원은 “건설사와 직거래하는 대형 업체들은 그나마 낫지만 제강사로부터 철근을 받아 이를 가공 판매하는 중소·중견 업체들은 그야말로 살기 위해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내놓고 있다”고 했다.
● 대낮 찬바람 부는 철근 생산 공장
“철근 공장이 이렇게 시원한 것 좀 보세요. 원래 50도가 넘어요.”
25일 오전에 찾은 인천 동국제강 철근 공장 온도계에는 23.7도가 찍혀 있었다. 24시간 전기로가 돌아갈 때는 고철을 녹이기 위한 전기로의 전극봉이 시뻘겋게 변해 열기를 쉬지 않고 뿜어내던 곳이었다. 그랬던 현장이 이렇게 열기가 식은 건 철근 감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주간 작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쇳물을 뽑아내던 이 공장의 전기로가 멈춰 있는 것처럼 현재 철근 업계 전반의 열기가 차갑게 식은 것이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국내 철근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업체별로 33∼83% 수준에 불과하다. 감산을 위해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업계 1위 현대제철은 인천과 당진 공장에 대한 가동 중지에 들어갔고, 2위 동국제강도 밤에만 전기로를 가동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달 24일 산업용 전기료가 9.7% 인상된 건 철근 업체들에 비용 상승을 부추기는 또 다른 악재가 됐다.
권순철 동국제강 인천공장 제강팀 팀장은 “명절에도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던 공장이 이렇게 낮시간을 비워 두는 것은 정말 힘들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이들 철근 제강사들의 실적은 대부분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게 업계 공통의 의견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3분기(7∼9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3.1%, 동국제강은 79.6% 줄었다. 두 회사는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편이라 그나마 선방한 것이다. 상장사인 대한제강과 환영철강은 올 3분기 별도기준으로 각각 1억 원과 7억 원씩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 중장기 구조조정, 수출 활로 마련 등 필요
철근은 국내 철강 사업 매출의 26.9%를 차지하는 주요 제품이다. 국내 건설, 건축의 주요 소재로 쓰인다. ‘건설의 뼈대’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철근 업계를 이렇게 방치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장은 “저가의 중국산 철근도 수입되고 있어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국내 철근 업체들에 대한 대한 금융지원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우리나라의 철근 수요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정보를 업체들에 알려줘 미리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또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고로에서 생산된 중국산 철근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처럼 비용을 부과하는 등 ‘환경 장벽’까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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