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15년만에 2연속 금리인하]
이창용 “美 ‘레드스윕’ 예상 뛰어넘어”… 관세 인상 등 美보호무역 ‘파고’ 대비
내년부터 2년연속 1%대 성장 전망… 年2% 미만, 1954년 이후 6차례뿐
李, 총리 기용설에 “맡은 업무 충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1월 기준금리를 시장 예상과 달리 ‘깜짝’ 인하한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와 최근의 수출 증가세 둔화가 자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의 내수 침체에 더해 한국 경제를 지탱해주던 수출마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둔화될 것으로 점쳐지자, 한은이 경기 부양을 위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는 얘기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향후 3개월 뒤에도 기준금리를 연 3.25%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8일 금통위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 인하로 선회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10월 이후 (대내외 경제 상황에) 큰 변화가 있었다”며 우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꼽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 인상을 바탕으로 강도 높은 보호무역주의를 예고했는데, 여기에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며 우려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한은이) 미 대선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했지만 상하원 모두가 한쪽(공화당)으로 쏠린 ‘레드 스윕’은 예상을 뛰어넘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트럼프의 당선으로 한국의 대미, 대중 수출은 동시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최근의 심상치 않은 수출 둔화세가 2연속 금리 인하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3분기(7∼9월)에 수출이 전기 대비 감소(―0.4%)하면서 분기 성장률을 예상보다 훨씬 낮은 0.1%로 끌어내렸다. 한은은 이를 수출의 일시적 부진이 아닌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인한 구조적 둔화로 판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특히 최근 반도체 수출 물량이 감소하고 있는데, 단가까지 내려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한은이) 이 점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내수는 더 문제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내수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올 3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감소해 역대 최장 기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또 처분가능소득에서 얼마나 소비를 하는지 보여주는 3분기 가구당 평균소비성향은 69.4%로, 작년 같은 분기(70.7%)보다 1.3%포인트 하락했다. 평균소비성향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2022년 2분기(4∼6월) 이후 9개 분기 만에 처음이다. 소득이 늘어도 향후 경기 불확실성을 감안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같은 총체적인 경기 부진 상황을 반영해 한국은행은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낮췄다. 또 2026년 전망치는 1.8%로 내다봤다. 1954년 GDP 통계 집계 이래 성장률이 2%를 밑돈 경우는 1956년(0.6%), 1980년(―1.6%), 1998년(―5.1%), 2009년(0.8%), 2020년(―0.7%), 2023년(1.4%) 등 여섯 해뿐이다. 모두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오일쇼크, 코로나 사태 등 대형 충격이 있었던 시기들이다. 한은은 이제 한국 경제가 평상시에도 1%대 성장률이 상시화될 만큼 저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다수는 이미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내리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HSBC(1.9%), JP모건(1.8%) 등 5개 IB가 내년 성장률이 2% 미만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금리를 얼른 낮추고 시장에 돈을 풀어 침체된 내수라도 살려서 성장률 저하 속도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전체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새 국무총리 기용설과 관련해 질문을 받고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한은 총재로서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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