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10월 자동차 판매 통계가 발표되자, 베트남 언론이 들썩였습니다. 1~10월 판매량에서 처음으로 베트남 유일 자동차 제조사 빈패스트가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죠. 빈패스트는 이 기간 약 5만1000대 차량을 판매했는데요. 도요타(4만9000대), 현대차(4만8000대)를 제친 겁니다.
빈패스트가 설립된 지 7년밖에 되지 않은 데다, 2년 전부터는 순수전기차만 생산한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더 주목받았습니다. 아직 전기차 인프라가 부족한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 1, 2위가 모두 빈패스트 전기차(VF3, VF5)였으니까요.
빈패스트 전기차가 왜 베트남에서 잘나갈까요. 일단 싸기 때문이죠. 소형 전기차 VF3는 가격이 1327만원(2억4000만 동)부터 시작합니다. 휘발유 소형차와 비교해도 가격 면에서 경쟁력 있는데요.
빈패스트가 6월 말 내놓은 공격적인 마케팅도 한몫했습니다. 모든 신차 구매 고객에 계열사(V-그린) 충전소에서 1~2년 동안(모델 따라 다름) 무료 충전을 제공하고요. 모회사 빈그룹이 속한 모든 장소(쇼핑몰·호텔 등)에서 하루 5시간씩 무료 주차도 2년간 제공합니다. 게다가 각종 사은품까지. 여기에 베트남 정부의 전기차 등록비 100% 면제 정책까지 얹어졌죠.
베트남 언론은 빈패스트 전기차의 경제성을 강조합니다.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하노이시의 한 택시 운전사는 “예전 택시는 하루 운행하는데 평균 30만동(1만6500원)이 들었는데, 빈패스트의 VF5 플러스로 바꾼 뒤엔 그 절반 이하”이라며 “전기차가 휘발유차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하죠.
글로벌 평가는 냉정하기만
그리고 빈패스트와 베트남 언론은 얘기하지 않는(하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결정적인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내부 거래이죠.
빈패스트 전기차는 가장 크고 확실한 고객을 잡고 있는데요. 지난해 탄생한 베트남 전기 택시회사 GSM입니다. 이 회사의 택시는 100% 빈패스트 전기차(또는 전기 오토바이)로 운영되죠. 그럼 GSM 지분 95%를 보유한 대주주는? 팜 녓 브엉 빈그룹 회장입니다. 즉, 브엉 회장의 개인회사가 빈그룹 계열사인 빈패스트 전기차를 왕창 사주고 있는 거죠. 참고로 지난해 팔린 빈패스트 전기차 3만5000대 중 70%를 GSM이 사줬습니다.
이 정도면 전기차 팔아주려고 택시회사 차린 것처럼 보일 정도인데요. 물론 대기업 계열사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거야 익숙한 이야기이긴 합니다. 다만 회장 개인회사로 일감을 몰아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니 좀 특이하죠.
또 치명적이지만 역시 베트남 언론에선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빈패스트 전기차의 약점이 있습니다. 품질과 성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가격이 그렇게 많이 저렴한 건 아니란 점입니다.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전기차 VF5를 볼까요. 최소 구매 가격이 2588만원(4억6800만동, 플러스 버전)으로 나오는데요. 이건 배터리를 뺀 차량 가격입니다. 배터리 가격은 별도라는 뜻이죠. 빈패스트는 독특하게도 전기차 배터리에 마치 정수기처럼 ‘렌탈(구독)’ 개념을 도입했는데요. 배터리 렌탈을 선택하면 차값은 저렴해지는 대신 매달 120만~270만동(약 7만~15만원)의 구독료를 자동차 회사에 내야 합니다(충전비는 별도). 주머니가 가벼운 구매자의 초기비용을 낮추기 위해 이런 방식을 도입한 건데요.
그럼 배터리가 포함된 VF5 플러스 가격은 얼마냐. 3030만원(5억4800만동)입니다. 경쟁 차종인 중국산 BYD 돌핀(베트남 판매가 3544만원)보단 저렴하지만, 대신 완충 시 최대 주행거리가 300㎞와 405㎞로 차이가 꽤 큽니다. 싼 게 비지떡이죠.
빈패스트는 이미 혹독한 품질 논란을 겪었습니다. 지난해 5월 야심 차게 미국 시장에 진출한 빈패스트는 첫차로 중형 전기 SUV VF8을 출시했었죠. 이때 자동차 전문지의 리뷰가 쏟아져 나왔는데요. 좀처럼 보기 힘든 수준의 혹평 일색이었습니다. 제목만 한번 볼까요.
모터트렌드 ‘2023 빈패스트 VF8 첫 번째 테스트 드라이브: 발신자에게 반환’ 로드앤트랙 ‘첫 번째 주행:2023 빈패스트 VF8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인사이드 EVs ‘2023 빈패스트 VF8 씨티 에디션 첫 주행 리뷰: 으악’
에어컨, 내비게이션, 방향지시등, 승차감, 조립 마감 등등. 너무 많고 심각한 품질 문제와 함께 예상보다 별로 싸지 않은 가격, 짧은 주행거리가 약점으로 지적됐습니다. 빈패스트는 당시 상징적으로 999대의 VF8 차량을 베트남 하이퐁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운송해 왔는데요. 수백 대 차량이 이후 몇 달 동안 항구에 주차돼 있었다고 전해지죠. 지금도 빈패스트는 북미 지역 판매량은 따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도전인가 위험한 도박인가
한마디로 빈패스트가 ‘베트남 시장 1위’ 타이틀을 획득하긴 했지만, 거기엔 많은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자동차 제조사로서 평판을 쌓기까진 갈 길이 구만리이죠. 당연히 빈패스트는 설립 이후 줄곧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7년 누적 손실이 약 10조원에 달하고요. 올해 3분기까지도 적자행진을 이어갑니다.
그에 비해 공격적인 해외 확장을 추진하면서 벌여놓은 사업은 여기저기 너무 많습니다. 이미 북미, 유럽,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동 시장에 진출했고요. 인도와 인도네시아에는 생산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도 공장을 짓기로 했는데, 어려워진 시장 상황을 이유로 2028년으로 연기한 상황이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캐즘’에 빠지면서 찬 바람이 부는 요즘. ‘베트남판 테슬라’라는 빈패스트의 꿈은 그냥 한바탕 꿈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이런 회의론이 당연히 나옵니다. 특히 빈패스트 주가가 지난해 8월 나스닥 상장 직후 700% 상승했다가, 다시 단숨에 95% 폭락하는 유례없는 널뛰기를 벌인 터라, 더더욱 시장의 의심이 커지죠. 지난해 한때 장중 90달러를 넘기도 했던 주가는 현재 4달러 언저리에 머뭅니다.
하지만 빈패스트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이 빈패스트에 올인 중이니까요. 빈그룹 창업자이자 베트남 최대 부자인 팜 녓 브엉 회장입니다. 브엉 회장과 빈그룹은 빈패스트에 이미 100억 달러 가까운 투자금을 쏟아부었는데요. 지난달 추가 자금지원을 발표했습니다. 빈그룹은 빈패스트에 2조원을 추가 대출해 주고, 브엉 회장은 개인 자산으로 2조8000억원을 제공한다고 하죠.
빈그룹은 수년 전부터 자동차 제조업에 온 역량을 집중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 슈퍼마켓(빈마트)을 포함한 소매업을 통째로 매각하고 항공업과 TV·스마트폰 제조업에선 과감하게 철수했죠. 빈패스트를 그룹의 최우선으로 둔 건데요.
전기차 제조업은 본래 돈 벌기가 쉽지 않은 산업이죠. 테슬라조차 흑자를 내기까지 17년이 걸렸으니까요. 이러다 빈패스트 때문에 빈그룹까지 휘청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지만, 브엉 회장은 확고합니다. 지난 6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언제까지 빈패스트를 더 지원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죠. “돈이 바닥날 때까지요.”
화끈한 승부사의 과감한 베팅
브엉 회장은 왜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도전할까요. 그의 기업가로서의 행보 자체가 기회 포착과 과감한 베팅의 연속이었습니다.
브엉 회장의 사업 인생은 소련 붕괴 직후 혼란기였던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됐습니다. 소련 유학을 마친 뒤, 우크라이나에서 작은 베트남 국수가게를 하던 그는 값싼 인스턴트 라면에 대한 수요를 감지하고 모든 걸 걸었죠. 엄청난 이자율(월 8%)로 빚을 내서 라면 공장을 세웠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그의 라면 브랜드 ‘미비나’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고요. 그는 단숨에 성공한 기업인이 됐습니다.
이어 그는 빠르게 성장하던 베트남으로 눈을 돌립니다. 2001년 여행 간 해변도시 냐짱(나트랑)에서 럭셔리 리조트 개발이란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요. ‘바다에 돈을 쏟아붓는다’는 조롱을 받으며 개발한 ‘빈펄리조트 냐짱’이 대성공을 거뒀고요. 이후 하노이부터 호찌민까지 베트남 전역에 호텔·리조트·고급빌라·오피스빌딩·아파트 등, 가장 큰 부동산 프로젝트를 빈그룹이 휩쓸게 됩니다.
브엉 회장은 2013년 베트남 역사상 처음으로 포브스 선정 ‘빌리어네어(자산 10억 달러 이상)’에 올랐고요. 그에겐 ‘베트남의 도널드 트럼프’란 별명이 붙었습니다(트럼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동산 재벌이었지만,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시절 얘기입니다). 물론 빈그룹이 헐값에 요지의 땅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으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고요(물론 회사 측은 특혜를 받은 적 없다고 부인합니다).
그리고 이제 브엉 회장은 전기자동차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돌진합니다. 일단 기회를 잡으면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죠. 온갖 회의론이 난무하지만 그는 이를 모두 “근거 없다”고 일축합니다. 그는 지난 4월 연례주주총회에서 이런 비장한 비유를 들며 말했죠. “70년 전 역사적인 디엔비엔푸 전투(인도차이나전쟁에서 베트남군이 프랑스연합군을 상대로 거둔 최대의 승리)의 ‘모두가 최전선을 위해, 모두를 위해 승리’라는 슬로건처럼 우리는 빈패스트를 결코 놓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스토리가 아닙니다.”
내로라하는 경쟁자들도 고전 중인 글로벌 전기차 시장. 브엉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할 수 있을까요. 결과는 예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모든 걸 걸었다니 좀더 예의주시해 보려 합니다. By.딥다이브
전기차 제조업을 키우는 건 베트남 정부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온 나라가 팍팍 밀어주면 세계적인 전기차 브랜드 하나쯤 키울 수 있으려나요. 결말이 궁금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베트남 유일의 자동차 제조사 빈패스트가 1~10월 내수 판매량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라며 베트남 언론이 환호합니다.
-판매량 급증의 비결은 싼 가격+퍼주기식 마케팅, 그리고 내부거래입니다. 팜 녓 브엉 빈그룹 회장이 소유한 전기택시회사가 대놓고 빈패스트 전기차를 밀어주고 있죠. 빈패스트 전기차의 품질에 대한 혹평도 해외에선 파다합니다.
-하지만 빈패스트는 공격적 해외 확장을 멈추지 않고 있죠. 이러다 빈그룹까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베트남 최고 부자 브엉 회장은 “돈이 바닥날 때까지” 빈패스트를 지원할 거라는데요. 늘 “공격이 최선”이라던 그의 도전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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