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특별전
여성과 문자 주제 작품·유물 전시
올해 연간 방문객 100만 명 돌파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
노란색 바탕에 고릴라 가면을 쓴 누드 여성이 앵그르의 그림 ‘그랑드 오달리스크’ 속 여성처럼 옆으로 누워 있다. 그보다 더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이 이 문구다. 바로 밑에는 ‘미술관 현대 미술 섹션에 있는 여성 예술가는 5% 미만이지만, 누드화의 85%는 여자를 그린 것이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1984년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이 미국 뉴욕에서 결성한 ‘게릴라 걸스’가 1989년 제작한 포스터를 한국어로 올해 다시 제작한 것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관장 김성헌) 측이 보내 준 한글 번역 문장을 가지고 게릴라 걸스가 직접 만들었다. 예술, 대중문화, 정치,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性)차별을 비판하고 여성과 소수자 권리 증진을 외치는 그들 대표작의 한국어판이다.
이 작품은 인천 연수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랭피아 오디세이: 문자와 여성, 총체적 예술의 거리에 서다’ 기획특별전에서 게릴라 걸스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올랭피아 오디세이’ 기획특별전은 역사를 통해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을 비롯한 약자가 문자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작품과 옛 문서 같은 유물 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1863년, 남성의 시선에 의해 ‘선택되는’ 여성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 관객을 응시하면서 당대 프랑스 상류층 남성의 위선을 꼬집은 에두아르 마네의 누드화 ‘올랭피아’에서 따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이 자신만의 언어를 기록하기 위한 문자를 활용한 작품들도 조명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후난(湖南)성 장융(江永)현 일대 소수민족 여성들이 사용했다는 문자 누슈(여서·女書)다. 세계 유일의 여성 전용 문자로 알려져 있다. 한자계 문자로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자료로 미뤄 볼 때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말기에 유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시된 ‘삼조서三朝書’는 혼례 후 3일째 날을 기념하여 신부의 여성 친지나 친구가 주는 선물이자 결혼 의례 용품이다.
한글과 일본어 히라가나(平仮名)도 여성 전용은 아니지만 한때 여성을 중심으로 쓰인 적이 있다. 11세기 히라가나로 쓴 일본 최초 장편소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도 당대 여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집필했다.
2월 2일까지 열리는 올랭피아 오디세이 기획특별전에서는 이 밖에도 19~20세기 여성 운동을 태동하고 이끌었던 프랑스 여성 작가들의 편지와 글, 책 그리고 여성을 넘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일반인의 시각을 담은 영상 작품까지 다채로운 전시품을 볼 수 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이집트 로제타석(石)의 히에로글리프(성각문자·聖刻文字)를 해독한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의 고향 프랑스 피자크에 있는 세계문자박물관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관한 문자박물관이다. 올 5월 개관 이후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연간 관람객도 지난달 30일 기준 101만7103명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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