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기 수요 침체속 中 ‘밀어내기’
수익성 빨간불 “D램값 더 떨어질듯”
철강-석유화학 이어 타격 우려 커져
韓기업, AI용 D램 등 주력 차별화 모색
한국 반도체 업계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난항을 겪고 있다. 대표 품목인 범용 D램 가격이 최근 넉 달 새 36% 하락하는 등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때 한국 경제·산업을 최선두에서 이끌다가 중국의 저가 물량 밀어내기에 타격을 입은 철강, 석유화학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8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1월 PC용 범용 D램(DDR4 1G×8) 고정 거래 가격은 1.35달러로 7월 2.10달러 대비 35.7% 떨어졌다. 이는 재고 과잉으로 극심한 ‘반도체 겨울’을 겪던 지난해 7월(1.34달러) 수준으로 돌아온 것이다.
가격 하락 원인은 전 세계 PC,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얼어붙은 가운데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공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글로벌 D램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1, 2위로 70∼80%를 차지하고 3등인 미국 마이크론까지 합하면 95% 이상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푸젠진화(JHICC) 등 중국 업체들이 범용 D램 물량을 시중 절반 가격으로 풀면서 기존의 3강 체제를 흔드는 상황이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는 상대적으로 구형 반도체인 DDR4(더블데이터레이트4)에 집중돼 있다. 트렌드포스는 이와 관련해 “CXMT가 DDR4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자 메이저 3사의 DDR5 업그레이드도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는 DDR4뿐만 아니라 DDR5 생산량 확대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달 DDR4 가격은 제품 스펙에 따라 전달 대비 10∼20%가량 떨어졌는데 DDR5 가격도 5%가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판매 탓에 연말, 연초 동안 D램 가격은 예상보다 크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램 실적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가 낮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전망한 삼성전자 4분기(10∼12월) 영업이익 예상치는 3개월 전 14조7178억 원에서 6일 기준 9조7221억 원으로 33% 줄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예상치도 8조5247억 원에서 8조903억 원으로 5% 감소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주력하는 차별화 전략을 꾀하고 있다. 엔비디아 등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대표적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체 D램 시장에서 HBM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에서 올해 21%, 내년 30%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재고 조정을 감안하면 가장 어려운 시기는 내년 1분기(1∼3월)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D램 3사가 구형 반도체 생산 비중을 축소하고 선단 공정 중심으로 늘리면서 2분기(4∼6월)에는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와 함께 한국 주력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은 중국발 물량 밀어내기에 따른 타격이 이미 가시화된 상태다. 현대제철은 경북 포항2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고 포스코 역시 45년간 가동했던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석유화학도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주요 기업의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으며 잇달아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더 이상 중국과의 가격 경쟁으로는 승산이 없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반전을 모색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글로벌 경영 불확실성으로 녹록지 않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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