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이 가시기도 전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무산으로 인해 경제 불확실성이 크게 증폭되고 있다. 정국 불안이 장기화되고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당장 9일 금융시장에서 ‘블랙먼데이’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외환·금융 당국은 잇달아 긴급회의를 열고 시장 안정화를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일 비상계엄령 포고 이후 사흘 동안(4∼6일) 코스피는 2.88%, 코스닥은 4.27% 각각 떨어졌다. 특히 외국인은 이 기간 코스피에서만 1조 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로 1%대 저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정치 불안이라는 겹악재가 터지자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서 빠르게 철수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7일 국회가 윤 대통령 탄핵에 실패하면서 향후 국정 운용과 정치 상황에 변동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정치 불확실성 증가와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인해 다음 주초에 시장이 단기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정부에서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시사했지만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도 국내 증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정치적 위험으로 인한 내수 침체와 투자 활동 부진으로 한국 증시 하락 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홍콩계 CLSA는 한국 주식의 매도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정치 불안으로 인한 환율 상승 압박은 더 커졌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의 원화 자산 회피 심리가 높아지면서 환율이 1440원을 돌파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이후 환율 상승 압력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당국이 이번 주 환율 급등세를 막기 버거울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세빌스 코리아는 해외 투자자 등에게 발송한 이메일에서 “비상계엄령 영향에 따른 변동성은 투자자 신뢰가 중요한 상업용 부동산 시장까지 확장될 것”이라며 “정치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불확실성이 지속할 것 같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대외 신인도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확고하게 지키겠다”라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진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관계 부처 합동 성명을 통해 “경제부총리인 제가 중심이 되어 경제팀이 총력을 다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부총리는 “무엇보다도 대외 신인도가 중요하다. 필요시 상황별 대응 계획에 따라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 신용평가사들과 직접 만나고 국제금융 협력 대사를 국제기구와 주요국에 파견하겠다.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경제 설명회도 개최하겠다”고도 했다.
금융당국 역시 시장 안정화를 위해 금융권의 외화 유동성과 자산 건전성 지표를 점검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금융권에서는 환율이 상승할수록 금융회사의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고 기업대출의 연체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