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불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욱 증폭됨에 따라 국내 금융 시장도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개인 투자자들의 ‘패닉셀’(공포 매도)에 코스피는 연저점을 경신했고, 코스닥은 630 선까지 내주면서 4년 8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연말 소비 심리가 악화되면서 내수 침체에 대한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 개미 하루 1조2000억 원 패닉셀… 시총 144조 원 증발
9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2.78% 내린 2,360.58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1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그간 증시를 떠받쳐 온 개인 투자자가 8900억 원 상당의 주식을 순매도 하면서 증시를 끌어내렸다. 코스닥은 이날 하루 만에 5.19%나 빠지면서 4년 8개월 만에 630 선을 내줬다. 코스닥에서도 개인이 3000억 원 이상을 순매도해 양 시장을 합치면 개인이 던진 매물이 1조2000억 원에 이른다. 9일 장 마감 시점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의 시가총액은 2246조 원으로 계엄 선포 이튿날인 4일 이후 144조 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시총 기준으로 현대자동차(42조 원) 같은 대기업이 3개 이상 사라진 셈이다.
원화 가치 하락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오후 3시 3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37.0원을 나타냈다. 비상계엄 선포 전인 이달 3일 같은 시각(1402.9원) 대비 무려 34.1원이나 껑충 뛰었다. 이날 오전 11시 53분경에는 1438.3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경제 성장 둔화와 미국 보호주의 강화 기조에 따른 수출 악화 등 불안감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정치 리스크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투자자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면서 탄핵 정국 장기화가 불가피해진 것이 투자자들의 패닉셀을 자극했다. 실제로 이날 증시 하락 폭은 비상계엄 직후인 4일(코스피 ―1.44%, 코스닥 ―1.98%)보다 월등히 컸다.
과거와 달리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 증시나 가상자산 등으로 손쉽게 옮겨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치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증시 하락세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형진 빌리언폴드자산운용 대표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가 무산될 경우 개인 투자자의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불확실성 차단을 위해 조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원-달러 환율 상방을 1450원 이상으로 열어둬야 할 것으로 본다”며 “정국 혼란 장기화로 국제 신용평가사에서 한국의 신용등급을 낮출 경우 당국의 환율 방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두 차례 탄핵 정국과 달리 1%대 저성장 위기 국면인 데다,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이 부진하기 때문에 혼란한 정국이 수습되더라도 국내 증시 회복이 더딜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소비 심리 위축에 내수도 비상
정치적 불확실성 증가로 인해 연말 대목을 기대했던 유통업계, 자영업자 등도 비상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게 되면 내수 경기도 급격히 얼어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업체 등 원자재 부담이 큰 기업들도 환율 상승에 따른 수익 감소를 경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국 혼란으로 인해 정부 정책을 통한 경기 대응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또다시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내수 진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한은은 10월과 11월 연속해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하한 바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정책의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경기 진작을 위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며 “내년 1월 원-달러 환율이 안정될 경우 한은에서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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