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석상’의 의미[기고/조홍식]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1일 03시 00분


조홍식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조홍식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기후변화기본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지난달 24일 막을 내렸다. 소국이자 산유국에서 개최됐고 총회 직전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악조건에서 진행된 협상이었다.

그럼에도 파리협정 체결 이후 10년을 끌어온 국제 감축에 관한 협상이 마무리됐고, 선진국이 개도국에 2035년까지 매년 3000억 달러를 지원한다는 ‘신규 기후재원 목표’에 대한 ‘합의’를 끌어낸 것은 분명한 진전이었다. 기후변화 상황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부족하지만, 최악의 국제정치 상황에서 ‘합의’를 끌어냈으니 말이다. 그 동력은 기후위기 앞에서 국가의 개별 이익과 ‘전 지구적인 이익’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번 총회에서 주목을 끈 이벤트가 있었다. 당사국총회에 참석하는 국제 환경단체들은 1999년부터 매년 기후협상의 진전을 막는 데 기여한 나라에 ‘오늘의 화석상’을 주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3등을 한 우리나라가 올해는 급기야 1등에 오른 것이다. 국제 환경단체들이 한국을 1등 ‘기후 악당’으로 꼽은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화석연료 투자 제한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쿠 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파리에서는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국가의 공적 금융을 중단하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수출신용협약 개정 협상이 진행됐는데, 미국, 유럽연합 등 주요국이 찬성하는 가운데 한국이 협상 타결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우리 공적 금융기관의 화석연료 사업 지원액이 연평균 13조 원(2020∼2022년 기준) 수준이라는 점도 비판의 이유가 됐다. 이 시점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신규 투자는, 그것도 공적 자금에 의한 것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표현대로 ‘기후지옥을 향한 고속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밟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오늘의 화석상’은 기후위기에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느냐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기후위기 앞에서 국가가 실현해야 하는 공동선은 전 지구적 이익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기후위기로 생태적 기반이 무너진다면 국익이 설 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기후헌법소원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도 지적했듯이, 이 위험 상황은 오로지 각국이 자기 몫을 다하면서 서로의 노력을 촉진하는 전 지구적 연대를 통해서만 대응할 수 있다. 변화하는 경제와 무역질서는 이것을 규범적인 차원이 아닌 현실의 생존 문제로 바꾸고 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기술에 기반한 산업과 경제만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서 전 지구적인 이익과 국익은 상충(相衝)이 아니라 상호의존의 관계에 놓여 있다.

우리는 2050년 탄소중립까지 남은 25년 동안 우리 사회의 물리적, 제도적 기반을 전환해야 하는 거대한 숙제를 마주하고 있다. 국가의 공적 자원은 이 전환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들어내는 데에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오늘의 화석상’의 무게를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다.

#기후위기#당사국총회#오늘의 화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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