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대” 정신으로 야구 유니폼 입찰 따낸 ‘형지’ 최준호 부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1일 15시 46분


“저는 얼굴을 갖다 박아요 그냥. 3년 간 롯데자이언츠 관계자들을 만나러 부산을 50번은 찾아간 것 같아요.”

지난 달 25일 인천 송도 형지글로벌패션복합센터에서 만난 최준호 패션그룹형지 부회장(40)은 글로벌 스포츠 의류 브랜드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야구 유니폼 입찰을 따낸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패션그룹형지의 브랜드 ‘윌비플레이’는 올해 3월 롯데자이언츠의 유니폼 입찰을 따냈다.“(구단 관계자들에게) 만나달라고 조르고, 얼굴 보고, 우리 브랜드를 설명했다. 진심은 통한다. 한 마디로 ‘들이댄 것’”이라며 최 부회장은 웃었다.

1982년 서울 광장시장의 작은 소매상에서 최병오 회장이 시작한 패션그룹형지는 그룹사 매출 등을 모두 합치면 연 매출 약 8000억 원을 내는 기업이다. 1996년 전개한 ‘크로커다일레이디’의 성공으로 국내에 3050 여성캐주얼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패션그룹형지는 이후 샤트렌, 올리비아하슬러, 캐리스노트, 라젤로, 끌레몽뜨 등 여성복과 골프웨어 까스텔바작, 학생복 엘리트와 구두 브랜드 에스콰이어까지 품에 안았다.

최 부회장은 최 회장의 장남이다. 2011년 구매팀 사원으로 입사한 최 부회장은 잠시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아는 것 없는 낙하산’이라는 이야기가 싫어 2015년에 작업복 브랜드 ‘윌비’를 창업하고 기획부터 영업까지 모두 직접했다. 최 부회장은 “내향적이어서 영업이 특히 힘들었는데 공단, 업체 사장님들에게 눈 딱 감고 얼굴을 들이밀었다”고 했다. 3년 후 형지로 돌아온 그는 좀 더 외향적으로 변했다. 그때 만든 윌비는 롯데자이언츠 유니폼을 만드는 윌비플레이의 모태가 됐다.

최 부회장은 팬데믹 여파로 적자를 내던 패션그룹형지를 2022년에 흑자 전환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해 패션그룹형지의 영업이익은 122억 원으로 전년 대비 504억 원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598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75억 원 증가했다.

패션 업계가 소비 심리 위축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가운데 형지그룹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그는 ‘AI(인공지능) 형지’를 꼽았다. 패션업계에서는 계절이 지날 때마다 재고가 생기는데 쌓이는 재고가 많을수록 수익성은 악화된다. 재고를 줄일 방법을 몰두하던 그가 만들어 낸 게 AI형지다.

AI형지는 해당 계절에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제품을 내놓아 상품의 소비자 적중률을 높였다. AI형지를 기반으로 기획한 의류는 AI형지 없이 만든 제품보다 재고가 확연히 적었다. 최 부회장은 “자사와 경쟁사, 해외브랜드의 지난 제품 디자인을 AI에 학습시키고 이 옷이 몇벌이나 팔릴지 예상치까지 도출했다”며 “AI로 예측했을 때 100벌이 팔린다고 예측된 제품은 실제로 97~103벌이 팔렸다”고 했다.

최근 그가 신성장동력으로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중국에서의 교복 사업이다. 한국에서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교복 시장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프리미엄 교복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최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중국 합자법인인 상해엘리트를 통해 중국 프리미엄 교복 시장을 공략해 동남아시아까지 시장을 넓히는 게 목표”라고 했다.

최 부회장은 한국 신진 패션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진 지금이 K-패션의 글로벌 진출 적기라고 보고 있다. 그는 “브랜드 헤리티지가 상대적으로 짧은 신진 국내 브랜드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희망을 봤다”며 “형지의 품질 좋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세계 시장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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