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가 온다] 〈2〉 제 역할 못 하는 연금체계
2055년 고갈 국민연금 개혁 지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효과 미미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등 필요”
건설업에 종사하는 김모 씨(58)는 60세가 넘어서도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30년 이상 부은 국민연금으로 월 160만 원가량을 받을 예정이지만, 현재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세액공제를 위해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가입했지만 가입 기간이 짧아 국민연금이 은퇴 후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며 “어떻게든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이 전체의 20%를 초과) 진입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노년층의 은퇴 준비 상황에 대한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선진국의 은퇴 노인들이 두둑한 연금을 바탕으로 활발한 소비, 경제 활동을 하며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노년층의 은퇴 준비는 미진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1% 저성장 기로에 놓인 한국 경제에 노인들의 ‘소득 절벽’이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 유명무실 3층 연금 체계
연금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3층 연금’ 체계는 갖췄다. 하지만 기금 고갈 위험, 낮은 수익률 등으로 실질적으로 노후 소득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이 2028년까지 40%로 조정 중인 국민연금이 현행 제도대로 운영된다면 2041년부터 수지적자가 발생하고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윤석열 정부는 연금 개혁을 4대 개혁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 9월 정부는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4%포인트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2%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기도 했다. 규모가 큰 사업장부터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고 세제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통해 개인연금 가입을 유도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탄핵 정국 속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동력을 잃어버렸다. 연금개혁을 위한 법 개정은 사실상 어려워졌고,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설치 등 관련 논의는 후순위로 밀린 상태다.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사적연금 역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9월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400조 원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적립금의 83.2%가 예·적금, 보험 상품 등의 원리금 보장형에 쏠려 있다. 이렇듯 원리금 보장형에 돈이 묶여 있다 보니 퇴직연금의 최근 10년 연환산 수익률은 지난해 말 기준 2.07%에 그친다. 2022년 기준 개인연금 가입자 비중도 19% 수준에 그치고 있다.
● “수익률 제고 위한 제도 개선 필요”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 7월 확정기여형(DC)과 IRP 가입자를 대상으로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를 전면 시행했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정하지 않는 경우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시행 1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수익률 제고 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3층 연금’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민간 금융기관과 직접 계약을 맺고 스스로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과 달리 투자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별도의 중개 조직이 가입자 대신 적립금을 관리·운용하는 방식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적립금이 원리금 보장형에 쏠린 현재 상황은 보수적 운용이 아닌 방치에 불과하다”며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 디폴트옵션 등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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