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법인 총괄 9명을 전원 소집해 긴급 경영 전략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가 연말 글로벌 전략회의에 해외 총괄 전원을 모아 대면 회의를 연 것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달러당 1400원대에 고착화된 원-달러 환율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17∼19일 열리는 삼성 글로벌 전략회의 첫날인 17일 참석자들에 따르면 북미와 중남미, 중국, 동남아, 서남아,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 9곳의 삼성전자 해외 총괄이 모두 회의 개최 하루 이틀 전에 귀국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 참석한 A 부사장은 “원래 연말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됐지만, 트럼프 2기에서 예상되는 공격적인 관세정책에 더해 국내 정치 리스크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이번엔 안 되겠다. 다 들어와라’ 한 것”이라며 “주요 지역별로 환율 리스크와 대응 방안을 집중 보고했다”고 말했다.
다른 주요 기업도 비상 경영 태세다. 현대차는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호세 무뇨스 사장이 12일 해외 권역본부장회의에 참석했고, LG전자는 20일 조주완 사장이 주관하는 전사 확대경영회의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
“강달러에 신흥시장 매출 타격”… 현대차-LG전자도 비상 회의
[탄핵 가결 이후] 삼성 “해외총괄 전원 귀국” 달러로 사던 주요 원자재 공급 비상… 멕시코 공장 관세 장벽도 대비해야 현대차, 해외 본부장 불러 경영 회의… LG전자-SK, 전사적 위기 극복 나서
17∼19일 열리는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 첫날인 17일에는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부회장)이 주재해 전사 부문과 모바일경험(MX)사업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내년 시장도 올해보다 좋아지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 아래 삼엄한 분위기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 “강달러 여파로 매출·원자재가 타격 우려”
이날 회의에서 가장 큰 현안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원-달러 환율이었다. 이날 기준 환율이 1438.9원으로 마감하는 등 1400원대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B 부사장은 “현지 통화로 판매하지만 최종 매출은 달러로 잡히다 보니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전반적인 매출 감소가 우려되고 있다”며 “특히 신흥 시장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선제적으로 제품 가격을 올린 곳들도 있다”고 말했다.
각 해외 법인과 사업부 보고에서도 환율 리스크가 빠짐없이 언급됐다. MX사업부는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스냅드래건’을 퀄컴에서 달러로 사 오고 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와 메모리칩도 달러 기준으로 매입한다. 핵심 부품값 상승이라는 환리스크 여파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와 생활가전(DA)사업부도 패널, 철판 등 원자재 비용 일부가 강달러 여파를 맞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여파도 집중 논의됐다. 삼성전자 해외 가전공장 중 최대 규모인 멕시코 공장은 미국 수출 물량에 대한 고관세 부과가 예상돼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회의에 참석한 C 부사장은 “미국시장에선 멕시코 관세장벽 현실화를 앞두고 미국으로 물동량이 몰리는 데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항만노조 파업도 예견돼 있어 물류 리스크도 언급됐다”고 말했다. A 부사장은 “트럼프 취임 이후 공급망 리쇼어링(자국 내로 이전)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 전반적인 공급망 관리(SCM) 리스크에도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4대 그룹 연말 잊고 비상 경영 체제
삼성전자 외 주요 대기업들도 신년 경영 전략 회의에 돌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와 트럼프 행정부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12일부터 해외 권역본부장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새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호세 무뇨스 사장도 참석해 현안을 검토했다.
LG전자도 20일 조주완 사장 주재로 전사 확대경영회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 중 해외 비중이 80%를 차지하는 LG전자는 홍해 사태 및 중국발 화물 수요 급증 등으로 물류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LG그룹의 한 임원은 “지난해는 ‘다음 해에 더 잘해 보자’는 의욕적인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전방위적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훨씬 압박감이 크다”며 “본부마다 회의에 앞서 전략을 준비하는 데 긴장감이 상당하고 특히 국내외 정치 불확실성이 큰 우려”라고 전했다.
연중 구조조정으로 올해 말 경영진 인사는 소폭으로 마무리된 SK그룹은 정기인사 전부터 이미 각 계열사 대표들을 중심으로 내년도 사업계획 점검, 경영 위기 극복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SK온이 미국 달러화 부채가 급등하고 있고,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도 미국발 관세 리스크 영향권에 드는 등 SK그룹 전반에서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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