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취약계층이 주로 소비하는 저가 상품의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더 크게 오르는 ‘칩플레이션(cheapflation)’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고물가 상황에서 취약 계층의 부담이 더 커진 것이다.
18일 한국은행의 ‘Bok 이슈노트: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불평등’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1분위 저가 가공식품의 누적 가격 상승률이 16.4%에 달한 데 비해, 4분위 고가 가공식품의 가격 상승률은 5.6%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같은 소시지류의 상품이라도 할인점에서 파는 소시지가 백화점에서 파는 햄보다 가격 상승률이 3배가량 높았다. 칩플레이션은 값이 싸다는 뜻의 ‘칩(cheap)’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추세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저가 식료품과 고가 식료품의 가격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미국에서는 저가 식료품의 가격 상승률이 8%포인트 높았다.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에서도 저가 식료품의 가격 상승률이 고가 식료품 대비 14%포인트가량 컸다.
한은은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실질 소득이 감소하면서 저가 상품을 찾는 수요가 늘게 됐고, 이는 곧 저가 상품의 높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변화도 고가 상품보다 저가 상품 가격 상승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 물가 불평등은 더 심화됐다”며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고 평가했다.
저소득층의 부담을 높이는 칩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저가 상품의 가격 안정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했다. 한은은 “할당 관세나 가격 급등 품목에 대한 할인을 지원할 때 중저가 상품에 대한 선별 지원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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