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A 씨는 얼마 전 한 시중 은행에 퇴직금 지급을 요청했지만 ‘사업주 연락 두절로 퇴직 확인 불가’라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당했습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은 퇴직 사실 증명서류만 있으면 지급하게 돼 있고 A 씨가 고용보험 이력 등도 제출했지만, 은행은 ‘사용자 확인을 받아 지급한다’라는 내규를 법보다 우선한 겁니다. 결국 A 씨가 금감원이 민원을 제기하자 은행은 일주일 만에 퇴직금을 내놓았습니다.
퇴직급여 실물이전 제도 시행 등 퇴직금 관리·운용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은행, 보험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고객들에게 퇴직금 지급을 미루거나 불필요한 세금을 지출하게 하는 등 부적절하게 운용한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KB국민·하나·NH농협·우리은행, 한화생명·교보생명·현대해상화재 등 7곳의 금융사에 경영유의·개선 조처를 하면서 주먹구구식 퇴직금 운영 실태가 드러난 건데요.
대표적으로 이들 모두 사업주가 퇴직금 연간 납부 의무 금액을 제대로 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제도의 경우 사용자는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가입자 계좌에 적립해야 합니다. 제대로 입금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회사가 폐업이라도 하게 되면 근로자 입장에서 퇴직금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죠.
또 기업이 먼저 고금리 원리금보장상품을 요청하지 않으면 해당 상품 제안서를 제공하지 않는 등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제도의 경우 사용자는 통상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퇴직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중도 인출 과정에서 가입자의 세금 부담을 고려하지 않아 세금이 많이 떼인 사실도 지적됐습니다. 기업의 퇴직금, 가입자의 추가 납부금, 운용 수익금 등 재원별로 각기 다른 세율(비과세, 퇴직소득세, 기타 소득세)이 부과되는 만큼 가입자에게 유리한 순서로 출금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겁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상황인 만큼 고객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관련 제도를 설계하라는 차원의 조치들”이라고 전했습니다. 10월 말 시작된 퇴직연금 실물 이전을 통해 한국투자·미래에셋 등 증권사로 4000억 원 넘는 자금이 들어왔는데요. 60%가량이 은행에서 온 거라고 합니다. 다양한 투자 상품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이번 지적을 계기로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고객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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