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60원 뚫렸다… ‘벼랑끝’ 몰린 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7일 03시 00분


하루 8.4원 급등 1464.8원
정국 혼란속 15년만에 최고

원-달러 환율이 1460원을 훌쩍 넘어서며 연중 최고치를 또다시 갈아 치웠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460원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강달러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등 국내 정치 불안이 맞물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정치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원-달러 환율 1500원 돌파도 머지않았다는 암울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고삐 풀린 원-달러 환율 글로벌 달러화 강세에 정국 불안이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 가운데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환율이 1466원에 거래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고삐 풀린 원-달러 환율 글로벌 달러화 강세에 정국 불안이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 가운데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환율이 1466원에 거래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8.4원 오른 1464.8원에 거래됐다. 주간 거래 마감가 기준 24일(1456.4원)에 이어 연중 최고치를 다시 썼다. 이날 환율은 오후 시간외거래에서는 1467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가능성에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원화 약세는 유독 두드러진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원화 가치를 짓누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날 오후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는 담화를 내놓고,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곧장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고 27일 표결에 나서겠다고 밝히자 환율은 더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리스크에 고환율 공포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율 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경우 기업들의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을 비롯해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 부담 등 위험 관리 비용이 더 커지기 때문에 경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국 개입도 안먹히는 환율 “정치불안-트럼프 폭탄 겹치면 1500원”


[탄핵 정국]
환율 15년만에 1460원대 ‘패닉’
달러 강세속 ‘탄핵정국’ 장기화 조짐… 주요국 통화 비해 가파른 속도 하락
경제체력 약화, 자금이탈도 빨라… “정국안정-통상 골든타임 확보 시급”
최근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외환당국이 각종 시장 안정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상승세를 막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환율 상승의 1차 요인은 글로벌 강(强)달러이지만 원화 가치는 탄핵 정국 등 국내 정치 리스크 때문에 유로, 위안화 등 주요국 통화에 비해서도 훨씬 가파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만일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되며 정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시장 불안이 진정되기 어려운 만큼 고환율이 한국 경제를 더 옥죌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외환당국 안정 조치에도 ‘백약이 무효’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거래일(29일)까지만 해도 1394.7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1460원을 넘어섰다. 특히 이달 18일(1435.5원) 이후 5거래일 동안 원-달러 환율은 30원 가까이 급등했다. 환율이 장중 1460원을 넘긴 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이어진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15년 9개월여 만이다.

강달러 흐름에 주요국의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지만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연달아 맞이한 원화는 유달리 가치 하락(환율 상승) 폭이 크다. 증권 정보 사이트 ‘인베스팅닷컴’에서 이달 2일과 25일 달러 대비 환율을 비교해 보면 유로화가 0.92% 하락하고 위안화가 0.43% 오르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3.89% 올랐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과 중국도 강달러에 성장 둔화가 겹쳐 환율 상승 압력을 받고 있지만 한국은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더욱 약해진 데다 자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빨라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환당국은 각종 시장 안정화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이달 20일 당국은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상향(국내 은행 기준 자기자본 대비 50%→75%) 조정했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가 늘면 은행이 달러를 선물 매도(달러 공급)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된다. 앞서 19일엔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거래량을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늘리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는 대신 외환당국에서 스와프 거래를 통해 달러를 구하도록 해 달러값이 오르지 않도록 유도하는 조치다. 이 밖에도 최근 외환당국은 잦은 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 급등세를 저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당국의 안간힘에도 환율은 끝을 모른 채 상승하고 있다.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가능성이 불거지며 한국 정치권, 더 나아가 한국 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환율 상승의 근본 원인인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원화 약세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내부적으로 방어가 이뤄지면 환율이 이 정도까지는 안 올랐을 것”이라며 “무정부 상태와 유사한 정국에서 대응력이 전혀 없다 보니 원화가 자체적으로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트럼프 취임 시 환율 1500원 간다”

외환 시장에선 내년 1월 2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환율이 더욱 급등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규모 경기 부양책, 높은 수준의 관세를 통한 보호무역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돼 달러 강세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 취임 전후 1500원대를 터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하는데, 특히 관세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환율은 바로 튈 수 있다”며 “빠르게 정국 안정을 되찾고 대미 통상 정책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소비 심리 위축, 역성장 등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 이코노미스트 역시 “1월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갈 것 같다”며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가 중국, 멕시코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나라인데, 관세 강화 정책이 나올 경우 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국내 정치 리스크#강달러#관세리스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